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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ug 04. 2022

힘들 때 속세 뜬다고 할 필요가 없는 이유

스님과의 차담

템플스테이를 하면 심심치 않게 경험하게 되는 프로그램이 있다. '스님과의 차담'. 이름 그대로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다. 차담은 대부분의 사찰이 참가자 선택에 맡긴다. 참여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자유시간을 가져도 된다. 하지만 경험주의자가 이런 특별한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 다니며 사찰을 가도 스님과 대화를 나눌 일은 드물기 때문에 언제나 냉큼 손을 들어 기회를 잡는다.

스님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모두가 비슷한지 차담 시간 초반은 참가자들의 동작이 굉장히 조심스럽고 뻣뻣하다. 이때 스님께서는 '다 처음엔 그래' 평온한 표정으로 참가자들에게 어디서 왔는지 여쭤보시기도 하고 누구랑 같이 왔는지 등 소소한 질문을 건네며 얼어있는 분위기를 녹여주신다. 

'스님이 아니면 아빠 다리는 많이 불편해요. 다리 뻗어도 됩니다. 원하면 누워도 괜찮아요'

그렇게 찾아오는 따뜻한 분위기.


차담에 참여하기로 손을 들면 사전에 하고 싶은 말을 적을 수 있도록 쪽지를 받게 된다. 익명으로 궁금한 점이나 템플스테이에 찾아오게 된 사연 혹은 고민들을 한 두 가지 적은 후, 두세 번 접어 박스에 넣으면 스님께서 차담 시간에 그대로 읽고 생각을 말씀해주신다. 마치 엄마가 차만 타면 볼륨을 올리는 라디오 같다. 그럼 이건 보이는 라디오인가.

여러 템플스테이를 다니면서 알게 된 건 모두가 비슷한 사연과 고민을 갖고 산다는 거다. 박스에 항상 들어있는 고민들이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사회생활이 힘들어요'

'취업 준비가 정신적으로 우울합니다. 저는 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부부와의 관계가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을까요?'

정신적으로 좀 더 건강하고 단단해지고 싶다는 말을 일상과 연결 지으면서 포장지만 달라진다.

여러 스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가장 '아하!'싶었던 대목은 스님으로써의 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이 힘들어 스님이 되고자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속세를 떠나올 때는 템플스테이처럼 매일 여유롭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마음을 비우면서 살 거라 생각하면서 오기 때문이다. 스님도 공부를 벗 삼아 살아야 하고 주어지는 역할과 사찰 관리 업무가 있으며 고된 수행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는 거다. 몸소 경험하면 오해였다는 것을 알고 돌아간다고 한다.

실제로 각 사찰마다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이 계신다. 회사의 팀장 역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업무를 하시며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유익하도록 힘쓰신다.

법주사에서는 석가탄신일 행사 준비로 모든 스님들께서 이른 오전부터 회의에 참석하시기도 했다.

스님으로써의 삶도 다른 면에서 힘들다는 사실을 많이 보고 들은 지금은 일말의 고정관념마저 와장창 깨진 지 오래다. 스님도 쉽지 않다. 많은 것을 견뎌내야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님의 삶이 속세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안다. 

낙산사에서 차담을 나누었던 스님께서는 정신이 어지러울 때마다 붓글씨를 쓴다고 말씀하셨다. 삼십 장쯤 써야 비로소 반듯한 글씨가 일정하게 나온다는데, 결국 힘든 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찾아오지만 어떻게 풀어가냐에 따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 말씀을 듣고는 안도감이 느껴지더라. 스님도 그런데 나는 오죽하겠나. 그리고 다짐한다. 붓글씨를 쓰며 정신을 정리 정돈하는 스님처럼 더 나은 네가 되려는 노력을 해야지.


또 하나 강렬한 기억이 된 스님의 말씀이 있는데 아주 짧고 굵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은 죄악입니다'

앗...네 스님. 저는 매일 죄를 짓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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