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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May 22. 2022

석가탄신일 속 템플스테이

다섯 번째 템플스테이, 보은 법주사

다섯 번째 템플스테이,

날씨가 도와줬던 1박2일이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색감의 채도가 높아지는 날. 사진 편집 프로그램에서 생동감을 최고로 끌어올릴 때 나오는 색감이 현실에 반영된 날이었다.

다섯 번째 템플스테이 사찰로 법주사를 선택한 동기는 단순했다. 코로나 방역 지침이 완화되면서 체험형 템플스테이도 다시 활성화되었다. 체험형을 선호했던 사람으로서 이때는 자축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게 체험형 템플스테이 사찰을 찾다가 어릴 적 가 본 보은 법주사가 눈에 들어 왔다. 

석가탄신일이 신청한 기간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신청한 날로부터 한참 뒤에 알게 됐다. 그날 템플스테이에 간다고 엄마께 말했더니 '8일이 석가탄신일 아니야?'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처음으로 석가탄신일에 템플스테이를 경험하게 됐다.


법주사 템플스테이 체험형은 1박2일에 7만원(2022년 기준)으로 체험 비용 안에는 속리산 국립공원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다. 국립공원답게 산에 들어서면 펼쳐지는 밖과 완전히 다른 세상. 이리저리 뻗은 가지들에서 나는 초록빛 생명들이 만든 터널을 만날 수 있고, 계곡 물이 흐르는 투명한 소리와 새들이 자잘하게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입소 다음 날이 석가탄신일이라 사찰에서 우당탕 와당탕 꽤 북적이는 소리가 들릴 거라 생각했는데 관광객과 자연의 소리 외에는 조용했다. 무려 석가탄신일인데 분위기는 이전의 템플스테이와 똑같은 차분함이라 의아했다. 

일주문과 세조길 그리고 보살님들께서 거주하는 수정암을 지나면 템플스테이 숙소에 도착한다. 수정암처럼 법주사의 템플스테이 숙소도 법주사 아래 별도의 구역으로 꾸려져 있어 대웅전이 있는 법주사의 주요 공간과 템플스테이 숙소 사이를 오고 가려면 반드시 길 하나를 건너야 했는데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법주사에서 흔치 않게 인적이 드문 길이라 좋아했다. 길을 건너는 몇 초 사이에 눈에 담는 풍경은 평화로웠다.



앞서 '석가탄신일치고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싶은 차분한 분위기라 했는데 그렇다고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풍경은 아니었다. 템플스테이 첫날 법주사 구석구석을 구경하면서 무대와 각종 체험 부스 설치가 조용히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 결과 석가탄신일 당일에는 온갖 체험 행사와 공연이 펼쳐졌다. 대추차 연꽃차 등을 무료 나눔하기도 하고 캘리그라피와 연등 만들기 색칠놀이 등 기념품을 남길 수 있는 부스들도 있었다. 특히 평소에 아끼는 글귀를 캘리그라피 작가님께 신청해 그림같은 작품을 받았는데 그 작품을 글귀 주인인 아나운서분께 전하니 SNS에 올려주셔서 특별한 추억까지 생겼다. 악기 연주나 합창으로 만드는 무대도 볼 수 있었다. 리허설무터 본 무대까지 일련의 과정을 꼼꼼하게 챙기고 지켜보는 스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드론으로 사계절의 법주사를 담은 사진 전시도 인상적이었다. 법주사의 사계절을 볼 수 있는 사진 하나하나를 보며 이틀만으로는 볼 수 없는 사찰의 자연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지붕에 쌓인 눈을 찍은 사진은 언젠가 눈이 쌓인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싶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했다.

석가탄신일 행사 중 가장 특별했던 순간은 '관불' 의식이다. 관불은 아기 부처님 머리 위에 물을 뿌리면서 죄와 번뇌를 씻어내고 자신을 가다듬는 의식이다(당시에는 몰랐는데 추후에 검색해보니 의미가 깊더라). 석가탄신일에 하는 의식 중 하나라고 하니 템플스테이를 여럿 가도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이다. 물을 붓고 나면 옆에 서 계신 스님께서 팔찌를 주시는데 108배로 완성하는 염주와는 또 다른 기념이 되어 눈에 보일 때마다 물을 붓던 그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석가탄신일이 포함된 템플스테이라고만 설명하기 아쉽다. 석가탄신일 덕분에 생긴 '처음'도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엄마가 템플스테이 도중에 오셔서 함께 공양을 먹었고, 석가탄신일 준비로 담당 보살님께서 수정봉 등산에 함께 하지 못해 처음으로 같은 방을 쓴 참가자들과 등산과 공양을 함께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으로 새벽 예불 후 108배를 해 '108배는 저녁 예불 뒤가 더 편하구나' 깨닫기도 했다. 템플스테이 다섯 번이면 모든 게 익숙해질 것 같지만 모든 경험들이 다 그렇듯, 이제 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떤 것을 대할 때 다 안다거나 익숙하다는 생각으로 넘기지 말라는 주인없는 조언을 듣게 하는 것이 템플스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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