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지 않다. 기댈 구석이 있으니
사찰 퇴소, 그 이후
1박 2일 혹은 2박 3일 템플스테이 일정이 종료되면 사찰 사무실에 유니폼을 반납하고 다시 입소 전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나면 정신을 선명하게 정리하기 어려워진다. 템플스테이와 일상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 누가 툭툭- 어깨를 쳐 주거나 "왁!"하고 놀래켜야 번쩍 깰 것 같은 기분으로 사찰을 마지막으로 돌아본다. 아직까지 낙산사 외에는 템플스테이 참여 사찰을 다시 방문한 적이 없다. 어쩌면 몇 년 아니 다시 찾기 힘들지도 모를 경내를 눈에 다시 한번 담는다. 산세와 굴곡을 같이 하는 처마, 누군가의 간절함이 담긴 기왓장들이 쌓여있는 모습, 대웅전의 크기. 다시 보다 보면 흐린 정신은 곧이어 사찰로 여행 온 관광객 영역으로 넘어간다. 허무하지 않다. 기댈 구석이 마음에 생겼으니.
템플스테이를 경험했다고 해서 스님들처럼 말의 높낮이나 생각 그리고 기분이 차분해지지는 않는다. 개과천선을 바랐다면 그것 또한 욕심이다. 이런 것들을 기대하며 첫 번째 템플스테이를 예약했던 기억이 있기에 더 잘 아는 사실이다. 반 평생 혹은 평생 수행에 힘쓰는 스님들처럼 되길 바라는 것은 헛웃음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욕심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자꾸 템플스테이를 신청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기댈 구석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비상구 계단을 하나 혹은 그 이상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말 한 번씩 걸어보는 침대 위 애착 인형, 새벽까지 해도 피곤하지 않은 취미,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수도 있다. 갤러리에 걸려있는 미술 작품, 숨이 찬 만큼 보람 있는 달리기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실제로 회사 건물 비상구 계단일 수도. 형태와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 속에서 눈물이 버틸 수 있는 한계선 이상으로 차올랐을 때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비상구 계단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데 그것들의 총합이 '템플스테이'다.
낯선 공간이 주는 모험심
조용하지만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공간
새로운 영감을 주는 체험
혼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
일기 쓰는 저녁
한옥과 산
모두 일상 속에서 주저앉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 모든 것들의 총합이 있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단순히 위로의 대상으로 삼는 것만은 아니다. 더 노력해야지 그래 할 수 있어-스스로를 응원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긍정적인 방향으로 고민하는 의지의 자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자칭 '템플스테이 약빨'이라 하는데 그 약빨이 다 하려고 할 때 사찰을 찾는다. 사찰에서 지낸 시간 대비 효능이 길다. 석가탄신일에 다녀온 법주사 템플스테이로 2022년 3분기 끝을 살고 있으니. 이 정도면 기특한 비상구 계단 아닌가. 덕질하듯이 가고 또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