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Feb 04. 2023

하나씩 줍다 보니 이만큼 새로워졌고 넓어졌다

사람은 단어로 만들어지는 거라 생각한다. 어떤 경험과 사건 혹은 배움을 통해 단어를 줍게 되고 갖게 된 단어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서른한 살. 약 삼십 년간 내가 주운 단어는 뭐가 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생각하니 수많은 단어가 떠올랐다. 글, 문구, 책, 여행, 사진, 미술, 템플스테이, 맥시멈, 피아노, 낙관, 성실.... 항상 경험도 취미도 깊게 꽂힌 것도 많았던 사람에게는 많은 단어가 붙을 수밖에 없다. 단어를 주워 온 과정은 여정에 가깝다.

가족 여행을 자주 떠났던 어릴 적 가정환경(어릴 적이라기엔 지금도 우리 집은 여행 갈 궁리만 하는 것 같지만) 덕분에 당연하다는 듯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혼자 국내외를 다니다 머지않은 때에 세계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여행자가 되었다. 

세 살 버릇만 여든까지 가는 게 아니라 십 대 때 가진 버릇도 여든까지 갈지 모른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랑 노는 것보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더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몇 년째 글을 발행해 900명이 넘는 구독자분들께 218개의 글을 공개하고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십 대 때 갖고 싶어 했던 '작가'라는 단어를 나는 끝끝내 주워 담았다.


단어가 새로운 단어를 줍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연예인을 공부보다 좋아한 학창 시절 덕분에 블로그를 빠르게 접했고, 그걸 이십 대 내내 붙잡더니 크리에이터(어디선가는 내가 하는 일이 인플루언서라는데 그건 좀 머쓱하다)라는 출퇴근하는 직업 외에 독립적인 또 하나의 직업을 갖게 됐다. 그렇게 '크리에이터'라는 단어를 또 하나 획득했다.

가끔 하는 경험일 뿐이었던 그림 그리기와 전시 보는 걸 좋아해 갔을 뿐인 미술전 가기는 뉴욕 미술관 투어에서 거대한 확장이 일어나 작품과 작가를 공부하고 미술 경매에서 작품을 사는 사람을 목표로 삼는 사람이 됐다. '미술'이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내 단어라고 말하게 된 순간이 뉴욕 여행이다. 단어가 새로운 단어를 줍는 계기가 된 거다.

'템플스테이'도 미술과 비슷한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 한옥을 좋아해 고궁을 계절별로 챙겨 다녔고 여러 지역으로 여행을 다닐 때도 사찰을 다녔다. 열심히 다니면서 그 속에서 하루를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때마침 템플스테이의 존재를 알게 됐다. 다니다 보니 문화 체험이 새로운 세계를 접한 것처럼 재미있네? 그렇게 한 번 두 번 템플스테이를 분기별로 가더니 이제는 콘텐츠 기업과 협업해 매월 템플스테이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템플스테이 전문 에디터가 될 정도면 템플스테이라는 단어 또한 나를 이루고 있는 조각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단어의 양을 늘려 나의 판을 넓히는 것도 즐기지만, 기존에 주운 단어에 대한 애정 표현도 잊지 않는다.

구독할 때 등록했던 메일에 주기적으로 오는 '뉴스레터' 읽는 걸 좋아했다. 책만큼 열심히 챙겨 읽고 블로그에도 특히 좋아하는 뉴스레터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발행했다.

그렇게 꽂힌 사람처럼 읽다 보니 '나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했고 작년 연말에 뉴스레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기획부터 에디팅 편집 발행까지 혼자 다 해야 하는 심지어 마감기한이 2주마다 찾아오는 끝이 없는 프로젝트에 뛰어들 때, 당연히 걱정이 있었지만(브런치에도 시작할 때의 심정이 쓰여있다) 언제나 '에라이 모르겠다' 저지르는 사람답게 뉴스레터라는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운영한 지 3개월이 지난 현재, 뉴스레터 발송 서비스 플랫폼인 스티비에서 주관하는 성장 지원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터 트랙]에 합격해 사이드 프로젝트의 판을 넓힐 수 있게 되었다.


대 때 예상한 미래의 내가 가질 단어는 '작가' 딱 하나였는데 그 시절 미래라고 칭했던 시점을 현재로 삼고 있는 나는 훨씬 다채로운 단어들을 갖고 있다. 생각하다 보니 문득 대견하다.


아무리 mbti 검사 결과에 계획형이 수십 번 나오고 하루 루틴이 명확하게 설계된 로봇 같은 일상을 지내고 있어도 인생의 마지막에 서 있을 내가 최종적으로 갖고 있을 단어들은 확신할 수 없다. 예상해도 매번 빗나갈 테고. 가끔 인생이 재미있지 않냐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