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잘 쉰 것 같다. 캐나다부터 스위스 그리고 지금의 프랑스까지 쭉 여행에 대한 설렘을 느끼고 있다. 미국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포르투갈에서 장기여행의 피로감과 불안정적인 기분을 느꼈는데 그런 게 없어진 것 같다. 지금도 가끔 호스텔에서 자다 일어나면 집이 아니라 호스텔 이층 침대에 누워있는 것에 '아 꿈이었구나' 싶을 때가 있지만, 호스텔 밖을 나서면 거리만 걸어도 그렇게 다 좋아 보인다.
특히 유럽으로 다시 넘어오면서 그래도 경험이 많은 대륙이라고 훨씬 편안하게 다니고 있다. 특히 카메라를 들게 하는 풍경들을 많아 행복하다. '이건 무조건 찍어야 해!' 찰칵찰칵 할 때 가장 즐겁다. 도시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을 꼭 만나서 그런지 맑은 날에 대한 소중함도 커졌다. 귀하게 느껴져 더 열심히 걷고 일부러 돌아간다. 카메라 셔터도 부지런히 누른다. 그렇게 부지런한 여행을 하고 있다. 충분히 풍경과 영감 그리고 경험을 담아 쓰는 돈 이상으로 귀중한 가치들을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 심지어 수화물 무게에 포함도 안 되고 얼마나 이득인가.
2.
영화 <웡카>의 모든 OST를 매일 듣고 있다. 꿈을 이룬다는 게 뭔지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지금 듣기에 딱 좋은 배경 음악이다. 특히 웡카를 보면서 가장 좋아했던 명대사 '좋은 일은 모두 꿈에서 시작한단다'는 '맞아 맞아!'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게 한다.
첫 직장에 입사하고부터 세계여행을 꿈꿨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8년. 8년 동안 매달 모은 돈이 여행을 지속하게 하고 있다. 초콜릿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며 동전 몇 개와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낯선 땅을 찾아온 웡카의 자신감이나 이십 대 초반의 나나 다를 바가 없다. 무슨 자신감으로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돈을 모았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는 여덟 번째 나라 스물다섯번째 도시에 와 있다. 바라는 걸 이루게 하는 삶. 선택을 옳게 만드는 삶. 이 여행이 끝나도 그런 삶을 만들고 싶다. 과거의 내가 세계여행을 꿈꾸며 8년을 노력했고 결국 이뤄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게 무엇이든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3
니스를 떠나는 날, 게스트하우스에 꽁꽁 지퍼를 잠근 캐리어와 배낭을 맡겨두고 바다 앞에 나왔다. 11시 25분 니스빌역 기차를 타기 전까지 깨끗하게 갠 니스 풍경을 보고 가려한다.
해안산책로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귀에 꽂은 보라색 이어폰에서 흘려 나오는 웡카OST pure imagine이 지금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눈을 가득 채우는 푸른 바다가 잔잔하고 하얀 파도가 얇다. 그 위로 카약 몇 개와 비행기가 수시로 다니고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책하는 개들의 걸음은 신이 난 듯하다. 햇빛은 구름이 없어 가려지는 것 없이 양껏 떨어진다.
이 모든 것을 실제로 만나다니. 오늘 아침까지 보고 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저 멀리 세워져 있는 #ILOVENICE 푯말처럼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니스다. 꿈을 꾼 끝에 좋은 일을 만났나 보다.
4
니스에 머문 게스트하우스는 한 젊은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귀여운 어린이가 아빠에게 안겨 학교에 가는 모습을 조식 시간에 볼 수 있었고, 부부가 청소와 체크인 등을 모두 담당하고 계셨다.
특이하게도 유럽의 여느 호스텔과 다르게 '게스트하우스'라고 이름을 붙인 곳이었는데 머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분위기가 따뜻하다.
사실 방은 추웠다. 난방기가 돌아가는데 추운 걸 보면 유럽 건물 특성상 바깥바람이 잘 들어오는 것 같다. 다른 국가 호스텔 모두 공기가 차가워서 모포 안 가져왔으면 어쩔뻔했나 싶었는데 여기도 똑같다. 그럼에도 게스트하우스 총평은 별 다섯 개.
개인 서랍 위에 있던 옷걸이나 사물함에 걸려있는 자물쇠(원래 호스텔은 자물쇠를 개인 지참해야 한다). 샴푸 샘플과 수건. 방 안 투숙객이 모두 숙면에 들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이어 플러그. 수건 걸어두라고 침대 번호를 적어둔 전용 수건걸이. 매일 깨끗한 청소 상태 등 세심한 구석이 많았다.
특히 매일 아침 빵집에서 빵을 사다가 투숙객 접시 위에 각각 올려두는 조식 운영 시스템(?)이 해외 어느 가정집 식사 같았다.
집 하나로 운영하다 보니 적은 인원의 게스트를 받는 것도 분위기에 한 몫했다. 조식 먹으면서 두세 명의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아침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체크아웃하는 날, 3층 같은 2층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캐리어를 낑낑대고 내려갈 예정이었는데 사장님이 보시고 번쩍 캐리어를 들어 옮겨주셨다. 쏘 스윗... 17kg짜리 캐리어인데 어떻게 드셨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5
이 나라 저 나라 여행을 하다 보니 나라마다 같은 메뉴를 다르게 부르는 걸 알게 된다.
이번 주에 마르세유 기차역에서 차이티라테를 주문하는데 직원분이 차이티라테를 못 알아들으시는 거다. 메뉴에 차이티라테라고 쓰여있는데...? 내 발음이 별로인가 보다-죄송했다. 어찌어찌 추측하셨는지 20센트가 부족하다해서 드렸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대로 드렸는데 내가 동전을 잘못 세었나 싶었다. 그렇게 주신 음료를 받아 들고 나왔는데 1분쯤 뒤에 직원분이 "마담....!!"하고 뛰어오신 거다.
알고 보니 보통 차이라테라고 불러서 생각을 못 했다고 그 음료 아니란다. 이번에는 직원분이 미안한 표정이셨다. 기차 시간도 남았고 괜찮은데 허허.
다시 온전한 차이티라테를 받아 들고 가게를 나오는데 문득 태국에서는 타이티라고 말해야 했고 미국에서는 차이티라떼가 아니라 차이티라'테'라고 말해야 알아들었던 기억들이 소환됐다. 터키에서는 짜이티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밀크티 혹은 차이티라떼라고 하는 녀석의 변화무쌍한 모습이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겼다.
TMI. 한국에서는 카페마다 차이는 있지만 밀크티는 파우더를 쓰고 차이티라테는 티백을 쓴다. 사실 카페마다 이름 붙이기 나름인 것 같긴 하다만.... 다만 프랑스 차이티라테는 파우더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