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연남동의 한 편지 가게에서 펜팔 서비스를 이용했다. 손편지를 쓰고 정성스럽게 스티커도 붙이고 스탬프도 찍은 봉투에 넣어 수납함에 넣으면 나도 그 수납함에 놓인 편지를 가져갈 수 있는 서비스다. 오랜만에 연필이라는 것을 집어 들어 편지를 쓰니 그 필기감이 사각사각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많은 고민을 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갔다. 읽을 대상을 모르는 와중에 쓰는 건 어렵지만 그만큼 설레는 행위라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반듯하게 반을 접어 나름대로 내가 쓴 글과 잘 어울릴만한 사람의 취향껏 꾸민 봉투에 넣었다. 수납함에 넣고 이제 선택의 순간. 함에 놓인 편지는 스무 개 내외. 흠... 뭘 가져가지.
미용실에서 염색 색상을 고르는 것만큼이나 신중하게 주인을 기다리는 봉투들을 훑던 눈길은 한 봉투에 적힌 문장에 멈췄다.
용기의 무게나, 크기가 다르겠지만 당신의 용기가 새로운 '연'이 닿는 선택이길 바라요!
역시 문장의 힘은 대단하다. 어떤 고민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계기까지 주니. 요즘 내가 하는 모든 고민의 키워드이기도 한 '용기'가 들어간 문장은 내용을 궁금하게 했고
"저 이거로 할게요!"
그렇게 나는 누가 썼는지 모를 편지를 받았다.
정작 나조차 알면서도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인데 손편지가 주는 설렘은 그 어떤 상황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안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을지 모른다는 것과 나만을 위해 누군가 직접 펜을 들어 적어 내려갔다는 두 사실에 편지를 빨리 읽고 싶기도 하면서 이 기분을 오래 느끼고 싶기도 했다. 결국 내적 고민을 하다가 근처 카페까지만 참고 가져가자- 마음을 먹었더랬다. '까지만'이라고 하기에는 그 카페가 웨이팅이 있는 바람에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 봉투를 뜯지 못했지만.
봉투에 붙은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뜯어내고는 사실 구체적인 기억이 없다. 이후 다시 기억이 시작되는 부분은 봉투 속에 들어있던 두 장의 편지 중 한 장을 다 읽어 내려갔을 때쯤 혼자 카페서 울고 있으면 민망할 것 같아 편지를 눈 앞으로 높게 들었다는 것과 울지는 않았지만 그렁그렁했다는 사실쯤이다. 편지 내용은 구구절절 여기에 다 쓸 수 없지만, 봉투에 쓰여 있는 문구처럼 '용기'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과 다짐이 주를 이뤘다. 남들보다 많은 생각을 한 뒤에 결정을 내리는 편이지만 인생이 결국에 용기를 못 내 무언가를 놓치고 난 뒤 아쉬워하지만 용기를 내 계속 살아감의 연속 같다는 생각. 그래서 2020년에는 좀 더 단단한 사람으로 용기를 내보려 한다는 다짐. 이 편지의 주인이 되었다면 용기가 필요할 때 다시금 꺼내 읽으며 단단한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는 응원까지. 누가 봐도 정성을 담아 썼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반듯한 글씨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편지가 복권이었다면 나는 1등 당첨자인 것이다. 분명 이 편지는 내가 집을 줄 알고 쓴 편지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나와 잘 맞을 수는 없다. 그 정도로 완벽히 나를 위해 건네는 듯한 문장들이었다.
어떠한 도전에 주저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용기를 내기 어려운 요즘이었다. 완벽하게 잘 살고 싶어서. 한치의 오차도 없었으면 해서. 그래서 내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에 만든 수많은 생각들이지만, 결국 내가 힘들어지는. 이거야말로 한치 이상의 오차일 텐데-싶으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제는 그냥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때쯤 받은 손편지는 올 한 해 내가 받은 위로 중 단연 최고였다. 시기도 적중률도 최고였던 손편지 덕분에 용기를 낼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날은 편지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이의 글에 울컥할 정도로 위로를 받다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꽤 많았다. SNS를 보다가 누군가 쓴 글에 크게 공감해 저장 버튼을 누르고, 책을 읽다가 감동받아 수첩에 적어두고,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두고두고 보고 싶어 '나중에 볼 동영상'에 넣어두는 모든 순간들도 제작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마음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나 또한 그런 제작자가 되는 날이 있고. 아, 내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보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더 힘이 있기도 하구나. 진심을 전하는 데에 얼굴과 목소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구나. 얼마나 그 안에 마음을 녹이느냐가 중요한 것이었구나.
편지는 그 이후로도 다섯 번쯤 더 읽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테이블 위에도 내 옆을 지키고 있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 편지를 지니고 다닐 것 같다.
아, 그래서 그 편지 이후의 스토리는 없냐고? 다행히도 편지 가게에 답장을 접수하면 건네줄 수 있다고 한다. 꼭 답장을 보내야지. 서툴지만 많은 생각이 담긴 손편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