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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지 않는 남자(1)

by 여름나무

남자의 발걸음이 무겁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남자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한일자로 다문 입술에 짜증이 묻어나있다.

잠시, 아주 잠시 졸았다.

예민하게 울리는 벨소리.

아내다.

"안 올라오고 뭐 해?" 건조하고 날카롭게 들린다.

요즘 아파트는 정문을 통과하면 집에 알림이 뜬다.

숨 막혀 죽으라고 모두 작당을 한 듯하다.

남자는 올라오는 짜증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짧게 한마디 던진다.

"올라갑니다."


두 사람은 10년 전, 결혼을 했다.

아내는 프랑스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돌아왔지만, 입사가 어렵게 되자 집에서 쉬게 되었는데, 그 무렵 친구의 소개로 남자를 만나 탈출하듯 바로 결혼을 했다. 여자는 초혼이었고, 남자는 재혼이었다.


헤어진 전 부인은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었지만, 생각보다 촌티 나는 남자가 숨 막히고 지루하다는 애매모호한 이유로 이혼을 요구했다.

그 후 몇 년을 해외 지사로 돌아다니다 서울에 눌러앉게 되면서 남자도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대단한 알콩 달콩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집안 정리와 따뜻한 배웅, 보글보글한 저녁 식탁은 애초에 남자의 몫은 아닌 듯했다.


현관을 들어선 남자는 체념한 듯 정리를 하며 들어온다.

두 식구의 신발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양의 신발과 얼마 전 내렸던 비 때문에 나와있는 우산까지 완전한 콜라보를 이루고 있었다.

냉장고의 부패한 음식들과 냉동실의 정체 모를 까만 비닐봉지들, 소파에 쌓여가는 수건인지 옷가지들인지 구분이 어려운 뭉텅이들.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영수증과 비닐봉지들..

약봉지와 잡다한 쓰레기들..


소파옆에 서류가방을 내려놓는 소리에 짜증이 들어있다.


저녁 식사는 어제 먹었던 알쏭달쏭한 찌개에 달걀프라이 두 개를 인심 쓰듯 얹어주었다.

입맛이 덜하다며 대충 먹고 자신의 서재로 피신하듯 들어와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남자는 집에 와서 웃는 일이 거의 없다.

가끔 남모르는 여자와 채팅으로 대화도 나눠보고 약속 장소와 시간도 잡아본다. 하지만 만날 용기는 없다. 이것이 집에서 소소히 웃는 일의 전부다.


새벽 1시쯤 잠이 들어 6시쯤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하고, 내일이면 이 시간에 다시 노트북을 들여다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혼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아내의 상한 음식을 먹고 죽는 것이 고독사하는 쪽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이른 아침.

여느 때처럼 출근준비로 분주하다.

밤새 넷플릭스를 보던 아내는 동이 틀 무렵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대충 구운 토스트 조각을 입안으로 쑤셔 넣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이혼하지 않는 남자의 지루한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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