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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항아리

by 여름나무


벌써 3년이 되어간다.

그 해 아빠와 엄마는 나를 고아로 만들기로 약속이나 하신 듯 무더운 계절의 처음과 끝자락에 내 곁을 떠나셨다.


엄마의 삼우제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분한 마음에 울기도 싫었다.

심통 부리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엄마집 현관 비밀번호를 힘 빠진 손가락으로 천천히 누른다. 도어록의 개찰음마저 주인을 잃은 서글픈 소리를 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쏟아지는 눈물을 멈춰 세울 방법이 없었다.

한참을 현관에 멍하니 서있었다. 구순의 아버지와 팔순을 힘겹게 엄마는 느릿하고 애잔한 미소로 오가는 자식들을 반겨주었다. 그때의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콧속으로 파고드는 부모님의 체취에 이미 지친 마음은 힘없이 무너졌다. 현관을 지나 거실에 남아있는 엄마의 화분들을 못본채하며 베란다로 갔다. 세탁기 바로 옆, 엄마의 소금항아리.

내가 세상구경을 나온 지 백일쯤 되었을 때 할아버지께서 가져오신, 나와 나이가 같은 항아리다.

엄마는 항아리에 굵은소금을 가득 부어 간수를 빼셨고, 어린 나는 뚜껑을 열고 싶어 아빠의 손을 끌고 열어달라 보챘었다. 어릴 적 유난히 병치레가 많았던 나의 안녕을 위해 엄마의 정화수는 항상 항아리 위에 놓여있었다. 여린 딸아이를 지켜주는 수호라 믿고 싶으셨던 거 같다. 나는 장난스레 왔다 갔다 하며 한 모금씩 홀짝였던 철없던 그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다.

눈사람처럼 둥글고 반들반들한 몸통의 소금항아리. 알아보기 힘들게 새겨진 비딱한 문양 몇 개가 치장의 전부인, 소박한 엄마를 닮은 소금항아리.

아무런 생각 없이 뚜껑을 열었다.

엄마의 간수 뺀 소금이, 육면체의 투명한 소금이 나를 조롱하듯 올려다본다. 정화수와 함께 어린 나를 지켜주던 소금항아리는 노쇄한 엄마를 지켜줄 마음은 없었나 보다.


지금은 우리 집 베란다 한편에 엄마의 소금항아리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내 눈치를 보며 앉아 있다. 반짝이던 고운 테는 오간데 없고 희뿌연 먼지만이 항아리와 하나가 되었다. 집까지 데려 왔지만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화풀이를 소금항아리에게 하고 있는, 나는 옹졸한 항아리 주인이다.


6월. 여름 장마가 오려나보다.

공기 속으로 파고든 습기가 바람을 타고 얼굴에 부딪힌다. 오늘 처음 엄마의 항아리에서 소금을 꺼내 배추를 절였다. 엄마는 장마가 오기 전에 항상 배추김치를 담그셨다. 절여지는 동안 몇 번을 망설였지만 항아리를 닦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번 물을 붓고 부드러운 수세미로 문지르니 지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깨끗해졌다. 마른행주질에 반들거리는 모습이 화해의 손을 내미는 듯했다. 항아리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위로를 지나간 시간만큼 멋쩍게 건네고 있었다.


오전의 뜨거운 볕이 소금항아리의 마지막 습기도, 내 마음속 그리움과 원망의 앙금도 토닥여주고 있다.

남향집으로 이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한 햇빛에 구름도 나른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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