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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Dec 20. 2022

한 발 물러서서 세상 보기

나태주. 풀꽃1.


  

  잠을 잤던 건지, 눈만 감았던 건지 가히 짐작도 안 되는데 벌써 출근 알람이 울렸다. 어제 새벽 너무 잠이 안 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도움이 될 만한 을, 그것도 정량의 절반만 먹었는데 별 덕도 못 보고 아침 어지러움만 가져온 꼴이 되었다.


  월요일은 여느 날보다 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출근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날씨가 워낙 추운지라 상대적으로 길이 덜 막혔다. 더욱이 오늘은 올해 들어 최강 추위인 영하 13 도인만큼 도로는 별 막힘이 없을 거라 안심하며 집을 나섰다.


  빨간색 신호등에서 멈춰 기다리는 차량이 아무리 많은 들 무슨 상관일까마는 초록색으로 빛깔이 바뀌어도 그대로 서있다. 앞 차가 기다리니 나도 기다릴 수밖에. 


블로그 '미담한의원'에서 캡처


  지금 이 3차선 도로 위에서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졸린 걸까? 그중 몇몇이 도저히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운전대를 팽개치고 그냥 한숨 자는 걸까?


  시간은 먼지처럼 흘러가고 자동차 배기통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가 얼어버린 도로를 녹여주는데 차들은 앞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결국 30분 지각을 했다.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후회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다. 후회를 안 하면 그만이지 후회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은 또 무슨 궤변인가? 이래저래 머릿속만 복잡할 뿐이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 무슨 청승이 뻗쳤는지 2022년 카타르 도하 월드컵 결승전인 아르헨티나 vs 프랑스 경기를 보았다. ‘월요병’이 있는 샐러리맨이 무슨 객기(客氣)로 일요일 자정에 하는 경기를 보겠다고 생각했을까?


  우리나라와 브라질의 16강 경기도 새벽에 한다는 이유로 별 고민도 않고 포기한 마당에, 결승전이 뭐 그리 대수라고 남의 잔치 보려고 새벽잠을 쫓았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2월 15일(목) 오전, 프랑스가 모로코를 2대 0으로 이기고 결승에 오르자, 언론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먼저 올라와 기다리고 있던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월드컵 결승전 파노라마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월드컵 마지막 경기에서 첫 우승을 노리는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냐, 24세 나이에 두 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얻고 새 시대를 열려는 킬리안 '음바페'의 프랑스냐. 결승전답게 판이 제대로 깔렸다.


  만일 메시가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월드컵, 발롱도르, UCL을 석권하고 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건 최초의 선수가 된다.


  음바페가 지난번 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면 1962년 2회 연속 우승을 이끌었던 펠레의 뒤를 따르게 된다. 그때는 음바페를 '신성'이 아닌 '이 시대의 별'로 봐야 옳다. 아울러 '메시 시대의 끝'을, '음바페 시대의 시작'을 선포해야 할 판이다.



**거금 300원을 주고 판권을 구입한 딸애^^의 프랑스 응원 메시지!






  경기를 시청하는 모든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경기는 전반전 초반부터 후반전 중반까지 아르헨티나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프랑스는 아르헨티나 골 지역으로 제대로 된 패스 한 번 연결시키지 못했다. 당연히 유효슈팅도 없이 스코어는 2대 0으로 아르헨티나의 압승이 그려졌다.


  중계방송 카메라맨도 답답한지 간간이 음바페의 모습을 비춰주었는데, 본인도 적잖이 당황한 듯 연신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 한 마리 치타처럼 빠르게 골을 몰고 가 그물에 넣는 모습을 기대했던 내게 그의 굼뜬 모습은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그래, 너라고 항상 멋진 모습만 보이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니.’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후반 35분쯤부터 갑자기 프랑스가 뛰기 시작하더니 길들지 않은 성난 야생마가 초원을 달리듯 한 번의 요동이 있었고 순식간에 프랑스가 1골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미처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음바페가 또 한 골을 넣어 2 대 2 동점이 되었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그때 메시의 얼굴이 잠시 비췄다. 아르헨티나 다른 선수들이 초조와 당혹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비해 메시는 웃고 있었다. 좀 허탈한 웃음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신발끈을 고쳐 매면서 분명히 웃고 있었다.


  ‘월드컵 우승, 참 쉽지 않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 후론 다 알다시피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장정이 이어졌다. 90분으로 승부를 못 낸 그들은 연장전에서 다시 1골씩 주고받고는 승부차기까지 갔고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


   승리를 자축하는 메시를 보면서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3시가 지났다. 피곤했지만 워낙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인지 경기 장면이 영사기 돌아가듯 머릿속에서 요동쳤다. 메시가 아니라 바페가 웃었더라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였다.


  우리 대표팀이 뛴 경기가 아니었음에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약간의 도움을 받으려 했던 것이 아침 노곤함의 화근이 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일보다는 타인의 일을 대할 때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내린다. 내 문제는 제대로 해결 못하지만, 다른 사람을 상담해줄 때는 얼마나 잘하는지. 왜냐하면 타인의 일에는 불필요한 감정이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덕분이다.


  내가 한 발 물러서 있었기에 월드컵 결승전 이모저모를 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어느 한 팀을 응원하면서 그의 승리에 온 신경과 마음을 집중했었다면 이렇게 폭넓게, 그러면서도 세세하게 관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좁은 공간에서 주고받는 패스는 예술이었고, 프랑스의 저돌적인 속공은 무시무시했다.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 모순(矛盾)이지만 아닐 수도 있다.  


멍하니 보다보면 여러가지가 보이는 재미있는 사진. 블로그 '온화한 미소 - 성현'에서 캡처


  우리 삶에 대해서도 이런 시각이 필요하다. 나의 삶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지가 보인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길이 보인다.


  또한 나 외에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바라볼 때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선입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가 많다.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도 주로 내 경험에만 비추어서 바라본다.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게 될 때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나를 심란하게 하는 상황과 사건의 해결책도 모색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희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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