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배가 좀 아픈 것 같아 근처에 있는 역 중 화장실이 개찰구 안에 있는 역을 급히 찾았습니다. 바로 눈에 띈 것은 시청역. 어차피 여행할 역이니 그 김에 시청역을 여행할 겸 화장실에 들리기로 했습니다. 2호선 승강장에서 나가 1호선 승강장으로 가는 환승 통로에 위치한 화장실로 갔습니다. 이게 웬걸. 이미 변기는 꽉 찼고, 청소 미화원께서는 이제 청소할 것이라며 밖의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사람들을 내보냈습니다. 다른 수가 있나요. 나가야죠. 1호선 승강장을 통해 개찰구를 나와 화장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데 시청역 끝에 있는 화장실 앞에 기다란 사람들의 줄이 보였습니다. 머리에 빨간 머리띠를 묶고 군청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지?’하고 머리를 굴리는데 아뿔싸. 근로자의 날. 1년 365일 시위가 그치지 않는 시청역을 올 때 가장 피해야 할 날 중 하나였습니다. 한 번 좌절하고 나니 배 아픈 것도 좀 사라지더군요. 그냥 다시 2호선 승강장으로 가서 여행이나 마저 끝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다시 2호선 승강장으로 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가는 길에 2호선 역사(驛舍)의 벽을 이루는 붉은 벽돌이 눈에 띄었습니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역이라……. 그 존재해 온 시간이 얼마나 긴지 확 체감되었습니다. 시청역은 가장 오래된 지하철 노선인 1호선(1974년 개통)이 처음 만들어질 때 만들어진 역입니다. 후에 2호선이 점차 개통되면서 가장 오래된 두 개 노선이 지나는 환승역이 되었습니다. 만들어질 때의 역명은 시청‘앞’역이었으나 1983년 시청역으로 변경된 후 그 이름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울시청을 갑자기 이전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멸망할 때까지 이 역의 이름은 시청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서울은 무척 중요한 도시입니다. 한강이 지나가는 비옥한 토지가 가득한 곳이며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이곳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고려 남경(南京)을 거쳐 조선 한양, 일제강점기 경성을 지나 대한민국의 서울이라 불리는 이 도시는 이제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서울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많은 일들을 해주는 곳이 시청입니다. 이 시청은 자연히 서울의 중심이 됩니다. 서울에서 세종로를 거쳐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드높은 빌딩만이 가득한 강남과는 달리 서울의 왜 대한민국의 중심인지 역사, 문화, 경제적으로 보여줍니다. 시청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공간은 대한민국의 경관이 되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내국인을 넘어 외국인에게까지 인식시킵니다.
그런 시청의 역입니다. 근본(?) 호선이라 할 수 있는 1, 2호선이 지나는 이 역을 저는 서울의 중심 지하철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제 삶의 중심은 아닙니다. 제가 이 역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이유는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입니다. 덕수궁 내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도 위치하여 전시회 감상을 하거나 답사를 할 때 자주 찾습니다. 다양한 전시가 자주 열려 이 역 또한 자주 찾게 되지요. 그래도 이곳이 제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는가를 묻는다면 저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산, 신촌, 대흥과 같은 역에 비하면 방문한 횟수도 아주 적을뿐더러 그 이유 또한, 전시회 방문과 답사로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청과 같은 행정 건물과 다양한 사업 관련 건물, 호텔, 문화재만이 즐비한 이곳에서 사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 주변이 서울의 중심임을 인식해도 서울에 사는 많은 이들이 이곳을 자신의 삶의 중심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이 주변의 광경이 서울이나 대한민국의 경관으로 보일지라도 서울시민, 혹은 대한민국인일 자신 개인의 삶의 경관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청역 주변의 몇몇 이미지만 가지고 천만 서울시민의 삶들을 전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잊습니다. 개개인의 삶의 중심은 각각 다르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관점도 달라지기 마련이란 것을요. 이것만 명심하고 살아도 세상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의 중심인 시청역의 벤치에 앉아 세상을 구경하는 그날도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계속 제 눈앞을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