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의 과거와 현재

중화전(中和殿)

by baekja

석조전에서 동쪽으로 돌아와 중화문(中和門) 앞에 섭니다. 중화문을 제외하고는 중화전을 둘러쌌던 행각이 전부 사라져 중화전과 그 조정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궁궐의 정전들 중 유일하게 담장과 같은 행각을 둘러싸지 않아 탁 트인 느낌을 주지만, 권위는 떨어져서 지금의 덕수궁이 옛날의 황궁이 아닌 지금의 문화재, 공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끔은 행각의 답답함이 싫었는데 행각이 딱 사라져버리자 뭔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기분이 듭니다. 중화전의 모습이 예전과 달라졌음이 확실히 실감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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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전은 고종 39년(1902)에 지어졌습니다. 원래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했으나 즉조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 국가의 정전이라 하기에는 좀 좁고 위엄이 떨어지죠. 그래서 다른 궁궐처럼 중층의 커다란 건물을 지어 즉조당이 정전으로 쓰고 있던 ‘중화전’이라는 이름을 이 큰 건물에 붙여주었습니다. 근데 중화문 뒤의 중화전을 보면 중층이 아니라 단층입니다. 이는 고종 41년(1904)의 화재로 소실된 후 고종 43년(1906)에 다시 지으면서 바뀐 것으로 당시의 어지러운 시국과 궁핍한 재정이 중화전을 단층으로 만들게 하였습니다. 고종 42년(1905) 이미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이처럼 중화전은 힘없는 조선의 정전이었지만, 지어질 때만큼은 마지막까지 자주적인 근대 황국을 꿈꾸었습니다. 중화전의 문살이 이를 증명하죠. 보통의 푸른 단청과는 다른 황(黃)색의 단청이 중화전의 문살에 칠해져 있습니다. 계속 푸른 단청 문살만 보아오던 사람에게는 낯섦을 선사하지만, 마냥 낯설고 새로운 느낌만을 주기 위해 문살을 황색으로 칠한 것은 아닙니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을 문살에 칠함으로써 대한제국의 황궁인 덕수궁의 권위를 한껏 높이기 위해서였죠. 늘 정전의 가운데에 ‘정(政)’자가 들어갔지만, 덕수궁에서만 ‘중화(中和)’라는 이름을 쓴 것도 이러한 이유로 해석 가능합니다. ≪중용(中庸)≫에서 중(中)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和)는 천하의 공통된 도(道)입니다. 즉, 천하의 큰 근본이 되고, 공통된 도가 있는 이곳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정치를 펼쳐 이 어지러운 시국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의지가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 대한 제국으로 바꾸었음에도 나라가 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고, 중화전의 역할 또한, 황궁의 정전에서 덕수궁이라는 공원에 자리 잡은 커다란 문화재로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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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전까지 살펴보고 조정에 서서 높은 빌딩 숲 사이에 끼인 덕수궁을 둘러본 후 다시 대한문으로 향했습니다. 이 길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있어 봄이면 사람들의 눈길을 뺏는 길이죠. 저도 늘 봄이면 이 길의 벚나무들에게 잠시 시간을 주어야합니다. 담장과 행각들이 거의 사라진 덕수궁의 길은 정말 공원 같습니다. 저 또한, 궁궐이 조선의 가장 높은 왕이 살았던 곳이고,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가 벌어졌던 곳이라는 것을 가끔 잊곤 합니다. 고풍스러운 문화재가 가득한 공원이라고 무의식 속에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아마 덕수궁을 더욱 그렇게 인식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대한문 북쪽에 자리 잡은 카페와 그 앞의 연못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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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못은 방형 연못이 아닌지라 조선시대에 지어지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1933년 덕수궁 공원화 정책이 시행된 이후 전각이 헐려나가면서 빈자리에 연못이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연못은 꽤 오래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연못의 넓이가 넓었던 1950~60년대에는 서울시의 스케이트장으로 쓰이기도 했었죠. 이후 덕수궁 영역이 축소되고, 어느 정도 복원을 하면서 연못은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카페와 연못, 덕수궁을 문화재로만 생각했다면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라져야 했겠죠. 지금 사람들이 덕수궁을 바라보는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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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은 변했습니다. 이제는 대한제국의 궁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원이자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무작정 덕수궁의 모습을 100% 복원한다고 말하면 이제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말이 나올만한 상황인 것이죠. 담장과 알 수 없는 행각만 가득한 답답한 덕수궁의 모습을 이제는 그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덕수궁이 대한제국 때에는 나라 행정, 정치의 중심이자 메카였지만, 그 역할을 이제는 궁궐을 둘러싼 빌딩 숲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빌딩 숲에 지친 마음을 정원과 아름다운 건물들이 가득한 덕수궁에서 힐링받고 있죠. 아마 복원 때문에 연못을 없앤다고 하면 그 당위성을 인정받으면서도 반발에 부딪힐지 모릅니다. 이제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공간이 아닌 대한민국의 공간이니까요. 사실 다른 궁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의 궁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화재 가득한 공원이 되었습니다. 궁궐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대중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꽃놀이, 단풍놀이를 가볍게 즐기고자 한다면 누구나 궁궐을 찾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시대가 변했고, 공간이 변했으며 그 역할 또한 변했습니다. 아마 지금의 덕수궁과 궁궐의 모습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겠죠. 그래서 늘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가장 크게 보이는 두 가지 가치, 복원·보존해야 할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공원의 가치 사이에서 말입니다. 궁궐이라는 공간이 또 어떤 의미로 변할지 모르는 것이니까요. 제게도 그렇습니다. 궁궐은 어느 때는 과거에 머무른 궁궐, 다른 때는 지켜야 할 문화재, 또 어느 때는 쉬는 공원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이렇게 많은 의미를 궁궐이 가지고 제 삶에 들어와 있지만, 앞으로도 궁궐을 방문하면서 더 많은 의미가 생기고, 지금의 의미가 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의미는 제 삶을 또 다른 방식으로 바꾸겠죠. 저는 이를 기대하며 다음에도 또 궁궐을 방문할 것입니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오후 4시, 여행을 끝내고 대한문을 빠져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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