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전(石造殿)
준명당의 옆에는 거대한 석조 건물이 있습니다. 이름도 무척 단순합니다. 돌로 만든 건물이라 해서 석조전이죠. 기와가 얹어진 건물들만 보다가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건물을 보니 무척 어색합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걸 당최 누가 지었는지 궁금해 하실 것도 같습니다. 양식은 전형적인 ‘신고전주의’라는 서양의 양식이니 이 건물의 내력이 궁금해집니다.
이 건물을 세우고자 한 것은 고종입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근대화를 말하며 덕수궁에도 근대화의 상징 같은 건물을 원했던 듯합니다. 이 건물을 건립하자고 적극 추진했던 것은 당시 총세무사였던 영국인 브라운이었고 고종에게 브라운이 소개한 영국인 건축가 하딩이 1898년 설계안을 가져오며 본격적으로 건축을 시작합니다. 외형상으로는 석조건물이지만 안쪽은 벽돌을 쌓은 건물로, 외벽은 돌로 마감했습니다. 외형은 1906년에 다 지어졌고, 1907년부터 실내장식을 시작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대화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건축을 시작한 석조전의 완성된 때는 이미 일제가 조선을 거의 다 삼킨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석조전과 함께한 근대화의 꿈은 허망하게 사라졌습니다.
완공을 한 후 안 쓸 수는 없었던 석조전은 이왕직의 연회장으로 이용하거나 일본으로 강제 유학한 영친왕이 일시 귀국하여 임시 숙소로 사용하던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빈집이었습니다. 그마저도 1922년 이후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33년 덕수궁 공원화 계획에 따라 일본인들의 소장품 중 영친왕이 선별한 것들을 전시하는 덕수궁미술관이 되었습니다. 이후 1938년에는 석조전 서관을 짓고 창덕궁에 있는 이왕가박물관을 옮겨왔습니다. 이렇게 설립된 이왕가미술관은 서관에는 창덕궁에서 옮겨온 조선 미술품, 본관(원래 있던 석조전)에는 일본근대미술품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석조전은 해방 후 한때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 신탁통치를 논하던 미소공동위원회의 회의장으로 사용하다 6·25전쟁의 전화에 휘말려 그 구조만 남기고 전부 소실되었습니다. 전쟁이 마무리되고 1953년 수리하여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했습니다. 본관은 궁중유물전시관이 2007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발전해 경복궁으로 이전함에 따라 2009년부터 5년간 내부를 원형대로 복원하여 2014년 대한제국 포고일인 10월 13일에 준공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여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예약을 하면 석조전의 내부를 볼 수 있죠. 저는 아직 들어가 보지 않아 그 내부를 이야기할 수는 없겠습니다.
석조전 서관은 여전히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시회를 좋아하는 제가 이곳을 빼놓을 리 없겠죠. 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한 번씩은 석조전 서관을 찾았고, 덕수궁에서 가장 많이 찾은 건물이 되었습니다. 다만, 최근까지도 석조전 서관 내의 화장실을 찾지 못해 화장실이 급할 때면 덕수궁 내의 화장실을 사용했습니다. 나중에 전시관 뒤쪽에 화장실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얼마나 놀랐던지. 전시장 벽의 색깔이랑 비슷하여 설마 뒤쪽에 뭐가 있을까 했는데 빈 공간과 화장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드디어 찾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석조전 본관과 석조전 서관의 앞에는 정원이 있습니다. 하딩이 설계한 바로크식 정원과 함께 1938년에 설치한 분수대가 있는 정원은 예쁜 꽃들과 잔디가 인상적입니다. 분수대에 물이 종종 나오고는 하는데 예전에 설치된 분수대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시원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밤에는 조명까지 밝혀져 아름다움이 더해지지요. 이 정원은 석조전에서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분수대 남쪽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보는 것도 좋습니다. 등나무들이 얽혀 만들어진 지붕 아래에서 분수대를 바라보는 운치가 제법이지요. 하지만, 봄이면 이런 잘 꾸며진 바로크식 정원보다 석조전 서관 주위로 심어진 나무들의 꽃이 상춘객들의 시선을 빼앗습니다. 오얏나무(자두나무), 진달래, 산철쭉도 좋지만, 능수벚나무 앞에선 그 아름다움이 바래집니다. 능수벚나무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그 아래에서 줄서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지요.
정원을 거닐다 다시 석조전 본관의 정면을 바라봅니다. 박공의 오얏꽃만이 이곳이 대한제국 황실의 건물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앞에서 서서 석조전의 정면을 이용해 미디어 파사드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명은 번쩍거렸고 화려했습니다. 밤을 밝혔던 강렬한 LED 조명들은 아마 석조전이 만들어졌던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겠죠. 만약 고종이 잠시 살아 돌아와 이렇게 근대화가 된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멋진 서울의 야경과 함께하는 석조전에 감탄할까요? 아니면 조선이 사라졌음에 슬퍼할까요? 그가 생각했고 추진한 근대화는 이미 좌절되었으니 이 상상마저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저 한때 근대화를 꿈꿨고 그 꿈꾸었던 근대화가 좌절한 곳에서 조용히 미술품을 보거나 경관을 즐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