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기행을 가다

by baekja

이번 여행의 테마는 문학관을 찾아다니는 것이었지만, 사실 저는 문학에 크나큰 관심은 없습니다. 이상하게 해피엔딩을 좋아했던 저는 해피 엔딩은 커녕 애매하거나 비극적 엔딩이 가득한 문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문학관 기행을 고른 건 문학에 대한 어떤 흥미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재밌어 보여서였습니다.


작년 경상도의 사찰 기행을 하다 간만에 불국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늘 목적이었던 그 길에 갑자기 한 표지판이 눈에 띄더군요. 동리·목월 문학관이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들리지는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문학관들을 찾아다니면 어떨까? 해남에는 남도 순례 문학관이 있었고, 강진에는 시문학파 문학관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학관들이 전국 곳곳에 훨씬 많을 것이고, 그걸 찾아다니는 여행은 제법 재밌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어느 문학관을 갈지 먼저 정해야겠죠. 한국문학관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한국에 있는 문학관 목록을 찾았고, 거기서 갈 문학관들을 정했습니다. 꼭 가고 싶은 문학관 몇 개를 정하고, 그 문학관들을 가는 사이사이에 있는 문학관들을 몇 개 집어넣으니 12박 13일, 길고 긴 여행 계획이 완성되었습니다. 강원도 원주부터 시작해 통영까지 내려갔다가 벌교까지 간 후 군산까지 올라오는, 전국 일주에 가까운 계획이었죠. 다 짜고 나니 ‘이게 맞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문학에 문외한인 제가 계획에 참고했던 건 고등학교 수능 공부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무수히 많은 문학 지문들을 떠올리며 그 문학 지문들과 관련된 작가들을 한 명씩 떠올렸습니다. 거의 억지로 한 공부였고, 암기에 불과한 공부였지만, 이럴 때만큼은 참 도움이 된다 싶었습니다. 문학을 제법 멀리하고 살아온 저조차도 문학관의 작가 이름쯤은 한 번씩 들어봤으니까요. 아는 이름들이 우수수 쏟아질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계획을 따라 여행을 하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매일 새로운 광경들과 마주했고, 매일 새로운 장소를 마주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거나 방문했던 장소의 새로운 면모를 보기도 했고, 정말 새로운 장소에서 익숙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물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고 힘들기도 했지만, 여행에서 마주치는 순간순간의 좋은 느낌들이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긴긴 여행길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늘 제 여행은 인문학 답사에 가까웠고,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제가 문화재를 답사하는 것처럼 문학관에서 깊이 있는 지식을 얻게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얕은 지식과 적당한 감상만이 남았죠. 하지만, 그것만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작가들의 삶을 둘러보며 그들이 만들어낸 문학을 넘어 그들에 대한 인상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저 이름 석 자만을 알고 있던 작가들이 종종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한 사람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작가’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여행이다 보니 전의 여행에서는 보기 쉽지 않았던 개인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 채 가지 않은 초가을에 시작한 이 여행은 가을이 완연하게 다가올 즈음 마무리되었습니다. 행복한 여행이었고,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했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여행의 시작은 원주였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마지막과 함께한 원주, 역설적으로 제 여행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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