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도 중순을 넘어가며 가을은 더욱 깊어가고 날씨는 더욱 쌀쌀해지고 있다. 연두빛의 풋풋한 잎사귀들이 짙은 녹음을 머금고 온 세상을 건강한 초록빛으로 뒤덮은 후 제각기 마지막 자신의 색들을 내뿜기 시작했다. 어느새 부대에서 바라보는 백령도도 푸른빛이 사라지고 노랑, 빨강, 주황의 화려한 색깔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그리고 단풍이 들어감과 동시에 자신의 생명력을 다 발한 잎사귀들이 짙은 갈색이나 황토색으로 바뀌어 그 빛을 잃고 스러져 땅바닥에 나뒹구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보며 군견반 낙엽을 쓸어 청소해야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곳이 썩 좋지만은 않다.
군견반 앞에는 꽤 큰 나무가 있다. 나무의 높이나 줄기의 둘레로 보아 하루 이틀 된 나무는 아닌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 나무의 크기와 나이에 알맞게 나뭇잎의 양도 상당하다. 정말 많다. 여름에는 애벌레들의 안식처가 되어 우리에게 애벌레 비를 맞게 했던 그 나무도 이제 잎이 슬슬 노란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 보임과 동시에 낙엽이 견사장 앞에 쌓이기 시작했다. 아마 10월과 11월 내내 청소에 시달일 일을 생각하니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붙잡고 그 청소할 견적을 재게만 된다. 지금 이 상황 때문에 단풍의 감성에 젖어들지 못하고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스러진 낙엽을 쓰레기라고만 내 자신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낙엽을 왜 치워야 하는 것일까? 외관이 청결해 보이기 위해서. 또는 낙엽 때문에 교통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라고 자주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사람의 논리일 뿐. 다른 방면으로 바라보면 낙엽은 쓰레기라고 불릴 만한 것이 아니다. 아스팔트는 검은색, 시멘트는 회색. 차갑기 그지없다. 자연을 갈아엎어 버린 파괴적인 그 증거물은 정말 차갑고 감정 없는 색들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편리함을 추구하며 만들어낸 괴물 같은 그 무언가다. 낙엽은 자신의 몸체인 나무 자신에게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숭고한 소명을 다하고 떨어져 자연과 공존하지 못한 인간의 추악한 뒷면마저 다 가려버린다. 누군가는 시들시들한 갈색이 보기 안 좋다고 할지언정 그런 뒷면을 가려버리고 보이는 황토색과 갈색의 바닥은 무척 아름답다. 낙엽이 바닥을 다 가리고 나서야 이제 우리는 예전에 우리가 보았던 황토빛의 흙바닥을 잠시나마 볼 수 있으며 사각사각 밟히는 귀를 간질이는 자연의 소리를 귀에 담을 수 있다. 그런 낙엽이 깔린 가을이 되면 구름 한 점 없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알록달록, 울긋불긋한 단풍, 그리고 단풍보다 알록달록하지는 못하지만 마지막 생을 다한 채 남겨진 나뭇잎 자신의 마지막 색을 담은 낙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어 나는 행복해진다.
낙엽이 이렇게 쌓이면 마치 캔버스에 무엇을 그려놓고 갈색 물감으로 덧칠해놓은 것처럼 바닥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때문에 순찰을 돌 때 돌부리에 걸리거나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질 뻔 한 적이 많은데 이는 다 사람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이어져야할 능선을 깎아 철조망을 만들고 그로 인해 낙엽이 쌓여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하는 바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낙엽이 한쪽에만 몰려 쌓여 자연의 법칙을 위반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은 그마저도 포용하고 품에 안는다. 봄이 끝나가도록 사라질 줄 모르던 낙엽들은 여름의 비와 바람에 의해 쪼개고 쪼개져 늦여름쯤이면 다 사라진다. 그리고 이제 남는 것은 가을에 새 낙엽들을 다시 흙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하는 것뿐. 이러한 계절적 순환을 통해 자연은 우리의 불편을 해소해주고 다 죽은 낙엽을 쓸모 있는 무언가로 소생시킨다.
낙엽이 여름이 지나 잘게 쪼개지면 흙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아 그에 흡수되길 기다린다. 그리고 낙엽은 썩어 흙에 흡수되고 양분이 되어 흙을 비옥하게 만든다. 이렇게 낙엽이 되어서도 충분한 쓰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을 사람은 쓰레기로 취급하다니! 사실 낙엽을 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흙을 다 덮어 숨도 못 쉬게 만든 것은 우리인데 말이다.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지쳐 쉬려는 낙엽을 받아들여 쉬게 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환원시키는 자연의 위대함에 그저 한낱 사람인 나는 낙엽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낙엽이 쓰레기인가? 군대에선 당연히 “맞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만을 생각하는 그런 사고방식을 조금은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자연에 들어와 철조망을 세우고 아스팔트와 시멘트 칠을 한 것은 우습게도 사람이다. 낙엽은 그 때문에 자연의 순환에 들어가지 못하고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 이렇게 쓰레기 취급을 받음에도 낙엽은 그러한 우리의 실수마저 가려주려 다시 한 번 제 몸을 다해 가을의 땅을 자신의 몸으로 뒤덮는다. 얼마나 숭고한 희생인가. 낙엽을 통해 인간의 오만함과 철없음, 그와 반대로 어머니 같은 자연의 포용력에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제대로 된 독립운동을 할 수 없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시를 썼지만, 현재 우리는 자연을 제대로 봐주지 못하는 우리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우리를 반성하기 위해 그 시를 다시 읽어 봐야하지 않나 싶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