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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by 우영이

휴일 저녁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이부자리에 올라앉아 조명등 밝기를 줄인다. 외출한 딸의 전화다. 느닷없이 집 청소는 잘 되어있냐고 묻는다. 지방에 내려간 아이의 전화는 언뜻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언제쯤 만나고 있는 친구를 우리에게 소개해 줄 것인지 운을 떼면서 사흘이 멀다고 재촉을 한다. 그때마다 나에게 얼굴 관리가 먼저라고 대꾸해 댄다. 만나면 그만이지 얼굴이 왜 전제 조건이람.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면서 주름이 생기고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볼품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잠자리에 들려는 시간에 또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자정 전후로 집에 도착한단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딸이 쓰는 작은방부터 거실까지 물건 정리가 이어지고 걸레질까지 추가된다. 훌훌 벗어진 옷가지는 세탁실 앞에 산 무더기처럼 자리한다. 근무지가 바뀌면서 이사를 도우러 갔다. 짐이 많지 않아 두 대의 승용차에 이삿짐을 싣고 옮기느라 늦어진 모양이다. 한밤중에 혼자 보내기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집까지 데려다준단다. 여자 친구를 챙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와닿는다.


잠깐 사이에 잠꼬대가 깊어졌는데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다. 딸이 남자 친구와 함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지금까지 사진으로만 보고 먼발치에서 어렴풋이 형상만 접했다. 인사를 꾸벅하면서 다가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잘 왔다며 손을 잡고 안아주는데 체격이 한 아름을 넘어간다.


네 사람이 식탁에 나란히 앉아 음료를 서로 권한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쉬도록 하였다. 자정을 넘긴 이 시간에 멀리까지 온 손님을 무심히 되돌려 보내는 것도 그렇고 해서 빈 밤에 침구를 준비해 준다. 아내와 둘이서 큰방으로 향한다. 아내는 광대뼈가 돋을 정도로 입가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직접 만나고 나니 더 듬직하고 믿음이 간다나. ‘어서 데려오너라’라고 할 때는 ‘기다리시오’ 하더니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우리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출근하는 딸과 함께 집을 나서는 이에게 손을 잡고 이른 시간에 다시 만나자며 배웅을 한다. 딸아이가 1년 가까이 사귀는 남자 친구와 예고 없이 자리를 함께했다. 조만간 정식으로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물러간다. 늦은 밤에 갑자기 방문하여 죄송하다며 거듭 고개를 숙인다. 한편으로는 못마땅하기도 하고 반면에 반갑기도 하다. 이 상황을 몰고 온 딸에게 연유를 듣는다. 이유야 어떡하든 내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몰염치한 일이다. 세대 차이에서 오는 일이라고만 할까. 어려운 자리라는 예비 장인 집에 이렇게 자리를 텄으니 다음부터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을듯하다.


사람의 첫인상은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한다. 근육질의 우람한 체격은 둘의 조합에 들어있지 않다. 한 번의 만남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다만 행동하는 모습에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어른에게 먼저 마실 것을 권하고, 나누는 말투에서 믿음을 가진다. 인생의 기나긴 날을 동반자로 아껴주고 함께하기로 약속한 둘의 앞날을 축하한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느낌이다. 머리에 망치로 내리치는 듯 첫 만남의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서른 넘은 성인들이 행한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가족 여행 중인 아들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 어제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황했겠습니다.’라는 아들의 말에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니. 가족이 되려는 이에게 무한 수용의 팔을 벌린다. 머지않은 날 두 가문의 어른들과 가지는 상견례에 이어 결혼식까지 순조롭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번과 같이 계획에 없는 사건이 불쑥 나타나는 일은 오늘이 처음이자 끝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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