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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라고]

by 우영이

연례행사다. 초등학교 동창들이 일 년에 한 차례 모교에서 만나 선후배의 정을 확인하는 날이다. 예년보다 개최 시기가 늦어졌다. 도시에서 모임을 이끄는 처지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참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동기들에게 연락하기도 하였다.
토요일 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할 무렵 같은 동네에서 중학교 시절까지 서로의 사랑방에 몰려다니며 지내던 동창의 전화다. 곧 도착한단다. 수년째 열리는 행사지만 졸업 후 모교 교정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학교의 모습은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우리가 뛰놀던 슬레이트 지붕의 교실은 사라지고 6학년 때 사용한 본관 건물 하나만 그때의 정경을 보여준다. 외벽은 알록달록 밝은 빛으로 단장되었다. 운동장은 흙바닥 대신 잔디가 새파랗게 어울리고 체육관과 급식실이 한쪽에 자리 잡았다. 높다란 탱자나무 울타리와 어른 두 아름이 넘는 플라타너스는 흔적도 없고 블록과 철제 담벼락이 앞을 가로막는다.
공식 행사는 이미 진행되었기에 기수별 좌석을 찾아 동기들 얼굴을 마주한다. 서울, 부산, 대구, 창원 등 지역별로 하나둘 도착을 하였다. 반갑게 악수와 포옹을 하는데 올해도 예외는 없다. 늘 함께하는 이들이 얼굴을 마주한다. 새롭게 참석한 이는 한동네에서 자란 여자애 둘 뿐이다. 소개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지난 까닭인지 누구인지 되묻는다.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다.
체육대회에 이어 행사가 절정으로 치달아 기수별 노래자랑과 경품 추첨이 이어졌다. 같이 온 동네 친구는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떠나고, 모두 자신에게 상품이 안겨지는 행운을 기대하는데 우리 기수들에게 화장지와 세제 등 갖가지 생활용품이 선물로 넘겨진다. 스피크로 익숙한 이름이 불리는데 점심 식사 후 자리를 떠난 친구다. 머뭇거리다 내가 뛰어나가 상품을 건네받는다. 탁상용 디지털 선풍기가 전달된다. 오십여 명이 참석하여 십여 명이 행운을 잡았다. 행사가 막을 내리고 숙소로 향하는데 삼삼오오 승용차를 몰아 읍내 식당에 도착하였다.
우리만의 시간이다. 임원진의 인사에 이어 건배 제의가 잇따른다.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확인한다. 오십 년 만에 만나는 어색함도 잊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허물이 없다. 시기도 없다. 그저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모습으로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이다.
이튿날 차에 실린 선풍기를 내가 쓰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자리에 없는 사람에게 주어진 경품은 애당초 무효가 아닌가. 동창에게 연락하여 확인하니 행사 참석 기념이라며 택배로 보내주기를 요청한다. 집에 필요한 물건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래 이게 뭐라고’. 대단한 것도 아닌 물건으로 마음 쓸 필요가 있는가.
한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지방으로 물건을 보내주었다. 기분이 홀가분하다. 육십 년 우정이 선풍기 하나로 흐트러질 뻔하였다. 언감생심 순간적으로 상품에 욕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추억이 떠올려지는 즐거운 날에 작은 물건 하나로 기억하기 싫은 날이 된 듯하다.
사람은 평상심이 중요하다. 본래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잘 받았고 고맙다며 다음에 만나자는 인사를 한다. 전화기를 내려놓는데 마음이 허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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