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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행궁]

by 우영이

손주의 재롱이 눈에 아른거린다. 어제까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은 아내와 며느리까지 셋이 육아에서 잠시라도 틈을 만드는 과정이다.
집에서 한 시간여 거리에 있는 수원 화성 행궁이다. 아내는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며 연신 입꼬리가 올라간다.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우산을 펴고 접기가 이어진다. 도심 속 수원성이 멀리 포근함으로 다가온다. 행궁 정문에 이르러 주변 경관을 둘러본다. 왼쪽에 우뚝 선 삼백 수십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곳곳에서 찾은 방문객은 여기저기 짝을 이루는데 여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볍고 여유롭다.
입장권을 넘겨주고 궁 안으로 들어서는데 문화 해설사의 안내가 서너 걸음 맞은편에서 전해진다. 안성맞춤이다. 궁에서 전문 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기회는 흔치 않다. 우리끼리 둘러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지만 해설사와 함께 역사의 현장을 느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일월오공도와 화성성역의궤에 표현된 당시의 기록이 유물로 오래오래 보존되었다. 다시 한번 조선 시대 역대 왕 중에서 문화를 융성하게 한 이는 세종과 정조라는 역사적 사실을 체득한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 화성 행궁이다. 어머니 혜경궁 홍 씨를 모시고 능행을 다닌 통치자로 정조의 효행은 특별하다. 궁에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그 안에서 지내다 사후에야 벗어날 수 있었던 시절, 수차례 왕궁을 떠나 도성 밖을 유람할 수 있게 하였다.
부모 모시는 자식의 도리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자식은 부모가 봉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버팀목이 되어 줄 호구로 아는 세상이 되어가는 현실이다.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린 이들이 나이 들어가는 부모에게 등을 기대는 일이 흔하다. 어쩌면 부모 된 이가 그렇게 만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거슬러 올라가 정조가 어머니 홍 씨에게 행한 일은 부모에 대한 효와 능행을 하면서 지역민에게 베푼 낱낱은 길이길이 전해지고 본받아야 할 일이다.
궁에서 나와 홀쭉해진 배를 채우려 갈빗집을 찾아간다. 왕갈비가 으뜸이라. 며느리를 위한 점심 자리다. 숯불에 올려진 두툼한 갈빗살이 짙은 색으로 익어질 때 배고픔이 갑자기 밀려온다. 냉면과 함께 몇 젓가락 삼키는데 수 주 전 기일이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어느덧 윗세대는 사라지고 내가 가장 웃어른이 되어버렸다.
어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과 전통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게 꼭 필요한 가풍은 전해야겠다. 강요된 게 아니라 몸소 실천하려 한 행동이 좋은 영향으로 남았으면 한다. 아버지 어머니의 건강한 삶의 가르침이 새삼 떠오른다. 때늦은 후회는 가슴만 여미어올 뿐입니다.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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