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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by 우영이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귀촌 생활이 몇 년째 이어지면서 하 세월 보내는 일이 아쉬워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걸린 현수막에 이끌려 독서 토론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매월 둘째 주는 새삼스럽다. 오매불망 삼 년째 행해지고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도서관 밖에서 만난다. 멀지 않은 거리를 가벼운 걸음으로 약속 시각보다 이른 시간에 나섰다. 정해진 토론 도서는 책꽂이에 넣어두고 사람 사는 이야기로 하루를 이어가기로 한다. 회원 몇 명을 제외하고 대다수가 모였다. 더운 열기를 식혀 줄 생맥주와 닭요리가 식탁에 오른다. 서로의 세상살이에 이어 책 이야기로 도돌이표가 치닫는다. 목 넘김만큼 만족한 시간이 흘러간다.
서로 각자의 관심사와 가정사가 오르내린다. 여느 때 정기모임과 달리 목소리가 높아간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서로 다른 느낌과 의견을 주고받는 자체가 즐겁다. 4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직업군의 경험과 생각은 덤이다. 다른 감정과 경험치를 넘겨주는 일이 서로 간에 치열해진다. 공감으로 웃고 감정이 격해지는 의미 있고 알찬 인문학 모임을 다짐하면서 하루를 접는다.
오늘의 만남을 정리하면서 소지품을 챙겨 상점을 나섰다. 주머니에 넣어둔 자동차 열쇠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둑 사리 밤거리에 자전거를 타고 거쳐온 길거리로 되돌아 찾아보는데 흔적이 없다. 집에 돌아와 구석구석 소지품을 뒤져보지만 오리무중이다. 저녁에 모였던 상점에 전화해 수소문했으나 헛수고다.
날이 밝자 자전거에 몸을 싣고 또 어제의 흔적을 되돌려본다. 기억이 희미하다.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인데 골목길에 접어들어서야 들렀던 곳임을 안다. 한 시간을 돌아다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오후에는 승용차를 이용해서 먼 거리를 가야 하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해가 먼 하늘에서 뜨겁게 내리쬔다. 지역 치안센터에 전화를 걸어 분실물 습득 신고 여부를 묻는데 내가 찾는 물건은 접수된 것이 없다.
이제는 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구매하거나 오랫동안 버려둔 예비 열쇠를 충전하여 시도해 볼 일이다. 지방에서 집이 있는 도시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일부터 만만찮다.
무거운 마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반가운 기분에 만났던 어제의 독서 모임이 순식간에 정신적인 고통으로 억누른다. 강의 시간에 쫓겨 총총걸음으로 내닫는다. 주차장을 지나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자동차 문 손잡이를 당겨보는데 어라! 문이 열린다. 잠금장치가 풀려 있다. 이는 열쇠가 이곳에 있다는 방증이다. 운전석 옆자리 모자를 들춰보는데 자동차 열쇠가 덩그러니 얹혀 있다. 이럴 수가. 이틀간 열쇠를 찾아 헤맨 결과가 허무하다.
망각이란 무엇인가. 기억의 자연스러운 소멸이다. 과도한 경우 건망증이나 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 자연적 과정이나 심리적 보호는 다행스럽다. 질병적 망각이나 과잉기억 증후군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트라우마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 것은 정신적 회복에 필수적이고 신의 축복으로 이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흐릿해지고 뇌의 정보처리 효율성을 위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과 같은 일은 나름 심각한 것이다. 잠깐 사이에 일어난 상황을 떠올리지 못하고 시간 낭비와 함께 정신적 고통을 동반했다. 아내의 핀잔을 듣는다. ‘가까운 곳부터 찾으라고 했잖아요.’ 머쓱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최근 들어 소지품에 대한 소재 파악에 시간을 허비한다. 기억력이 문제인가. 정신을 가다듬는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주변에서 접하는 중년의 치매 환자 소식을 듣는다. 오래전부터 일정한 장소에 특정한 물건을 올려두었다. 나름의 물건 기억법이다. 더 크고 심각한 망각을 당하기 전에 신중해야지. 반복되면 전문가를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면서 기억하고 싶은 일과 기억하기 싫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이날을 계기로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점검해 본다. 기억력 유지법을 챙긴다. 관련 음식도 적어본다. 하루라도 건강하고 젊게 살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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