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닿아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활력소다. 한두 해를 넘어 오십 년이 지속되었다면 서로가 이해하고 잘잘못을 따져도 금세 하나가 된다. 어느새 부부의 모임으로 직계 가족까지 어울려 만남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낸다. 어른들은 한 분 두 분 떠나고 자식들은 장성했다.
모임은 어느 곳이나 돈으로 서로의 틈이 생기는가 보다. 재무 담당을 하면서 회칙에 있는 입원 위로금 지급이 이틀 늦어졌다. 증빙 서류 첨부도 출력이 되지 않아 다음 모임 때 정산하려는데 당사자 회원에게 문자가 온다. 뜬금없이 ‘서류가 문제네’란다. 출력해서 첨부하겠다고 답장을 하였는데 이튿날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왜 접수 즉시 처리를 안 해 주는 것이냐, 공금을 다 써버린 것이냐. 내용 자체가 어이가 없다. 돈 십만 원에 목숨이 오가는 것도 아닐 터, 이 돈을 못 받아 살림이 중단될 정도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편안하게 쉬고 있는 저녁 시간에 더 통화를 이어가다가는 무슨 말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이 정도밖에 인식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 하며 오늘은 그만하자며 전화를 먼저 중단하였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만남을 지속한 게 얼마인가. 가족 못지않게 긴 시간을 함께해 왔다. 길흉사에 참여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본 시간이 아득하다. 돈 때문에 서로가 쌓아온 신뢰를 하루에 날린 셈이다. 돈을 빼돌린 것이냐? 회계에 의심조차 든다는 둥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더 열을 올린다. 무슨 사람이 그렇냐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별일 아니라며 수습을 하는데 두고두고 마음이 편치 않다. 정산해서 저녁에 통장으로 이체를 하고 그 사실을 문자로 보냈다.
금전 문제는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개인적인 입장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다를 수는 있다. 어쩌면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여겼기에 물러설 생각이 없다. 누구에게나 신념은 필요하고 자신의 주관에 따라 논리를 펼 수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를 비난하거나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도록 강요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갈등은 늘 존재한다. 의견 충돌은 각자가 가지는 삶의 경험치가 다르기에 생기는 일이다. 조정되고 양보하고 조율되면서 조직과 사회는 유지된다. 흑과 백만이 있는 곳은 병든 세상이다. 많은 사람이 버텨내는 조직에서 통일된 생각이 모인다면 다양성과 개성은 사라진다. 상충한 의견이 성장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면 성숙한 하나가 이어지리라.
정기 모임이다. 몇 주 만에 만나 상대에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뻗어 인사를 나눈다. 이전과 달리 시선은 외면한 채 서로가 다른 이야기로 오후 시간을 채워나간다. 머지않아 일흔을 앞둔 중년의 고약한 한나절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