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by 우영이

텃밭은 나날이 달라지는 기대감으로 늘 설레게 한다. 심은 작물은 기대 이상으로 수확물을 안겨다 준다. 아이들 소꿉 모양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이것저것 종류가 다양하다. 씨앗 뿌리고 모종 심고 뿌리내리는 모습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삼십 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늘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 있다. 뙤약볕 아래 흙을 밟으면서 생활하는 일은 낯설다. 시골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지내 일이 고작이어서 농사일은 서툴다. 직접 해 본 일보다 어깨너머로 어른들의 흉내를 낼 뿐이었다. 농사가 나와는 거리가 먼일로 여겼는데 어느새 그 속에 파묻혀 있다.
농사는 풀과의 씨름이다. 농작물은 손길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지만, 풀이란 녀석은 다르다. 뽑고 또 뽑아도 질기기가 나일론보다 더하다. 뿌리가 하늘로 솟아 줄기가 시들시들하다가도 물기만 공급되면 되살아난다. 잡초만큼 끈질긴 인생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한더위가 끝나갈 즈음 모종으로 심은 배추가 이랑 전체를 덮을 만큼 자랐다. 메마른 땅에 물뿌리개로 이랑 듬뿍 적셔주고 언제 배추 모양이 되려나 싶었다. 잎사귀가 겹겹이 자란다. 욕심을 부리면 솎아내어 김치를 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도시에 살면서 하루하루 날씨에 관심이 없었다. 텃밭에 심은 작물에 따라 일기예보를 살펴본다. 한 주가 멀다고 내리는 가을비에 이제는 그만 내렸으면 하는 기도를 올린다. 비 그친 오후 텃밭은 장화를 신어도 발 옮기는데 거추장스럽다. 삽으로 배추 골의 흙을 이랑으로 퍼 올린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지만, 발악하는 셈이다.
며칠 후 찾은 배추밭은 잎줄기가 아래로 처진 포기가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이파리를 헤치는데 포기가 쓰러진다. 뿌리 근처부터 썩어가는 물렁 병이다. 잦은 비에 수분 과다가 불러온 피해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파리를 소쿠리에 담는다. 뒷마당에 키우는 닭 먹이라도 줄 요량으로 쟁여 놓는다. 자라는 배추 네 포기 중 한 포기는 뿌리째 뽑아 밭 언저리로 팽개친다. 수확물에 가까워지는 작물이 폐기되는 서글픔에 가슴이 답답하다.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게 아니다. 하늘의 도움이 필요한 게 확실하다. 농사만이 아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지만 자연 앞에서는 보잘것없지 않은가. 짧은 시간에 우리의 주변은 변화가 크다. 더욱이 날씨의 영향이 곳곳에 보인다.
흔하디 흔한 가로수의 이파리조차 벌레들의 먹잇감으로 큰 잎맥만 남고 단풍의 아름다움은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한다. 기온 변화에 계절감은 구분이 무색해진다. 작물 재배로 자연과 가까이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신음이 깊어가는지와 닿는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병충해가 다양해져 방제가 필수다. 예전의 친환경 재배는 멀어져 간다. 인간이 함부로 해 온 결과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지구의 질서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의 작은 힘을 보태려 벌레들과 싸운다. 잦은 발걸음만이 답을 알려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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