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
한여름밤이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처럼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계속 글을 쓰지 않을 것 같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샘솟아 이 새벽에 노트북을 켰어.^^ 방금 아빠가 읽은 책의 제목이 '남자의 후반전'이야. 저자가 횃불트리니티 상담대학원의 김용태 교수님이어서 망설이지 않고 골랐지. 3년 전에 아빠가 그 대학원의 부설기관인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잖아. 상담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공감과 경청 대신 잔소리와 지시가 많았던 아빠였어. 지금도 계속해서 아빠 자신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공부하지 않으면 관성처럼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오늘 아빠가 세입자로부터 문자를 받았는데 9월 1일 전세계약 만료일에 나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어. 일주택이 재산의 전부인 우리로서는 매매되거나 새로운 세입자가 날짜에 맞춰 들어오지 않으면 빚을 내서 전세보증금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마음이 쫄리더구나. 한 달여 전부터 대출을 알아보고 필요한 서류도 제출한 곳도 있어. 막상 문자를 받고 난 후 부동산 여러 군데를 방문하고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하고 왔어.
아빠는 이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지혜를 얻고 싶었던 것 같아. 아빠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강한 사람이고 싶은데 오늘 문자를 받고 부동산을 방문하면서 알아차린 아빠의 마음은 그렇지 않더구나. 아빠의 불안한 마음과 달리 엄마는 기다려보자며 담담히 말했어. 아빠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되더라. 아빠가 아빠 자신을 돌아보아도 찌질이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
"찌질이 같아 보여도 괜찮아요. 찌질이면 또 어떤가요?"
이게 뭐지? 아빠 안의 또 다른 마음이 하는 말 같았어.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뭐. 오늘은 어제보다 덜 찌질할 거야, 아니 멋질 수도 있고. " 이렇게 아빠가 아빠에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네. 이 책에서는 하나 둘 몸의 기능을 잃으며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들에게 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보다 존재적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어. 중년의 남성들이 풀어야 할 숙제 중의 하나가 아버지와의 관계임을 성인아이란 개념으로 설명을 하고 있어. 아빠도 책을 읽으며 할아버지와 아빠와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어. 일제강점기와 6.25를 몸소 겪으셨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셨을 할아버지. 할머니를 먼저 떠나보내시고 애도할 시간도 없이 자식들을 위해 재혼하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개척교회 목사로 살아오신 할아버지. 경쟁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위로할 시간도 없이 치열하게 사셨을 할아버지. 공부를 좋아하고 잘하신 할아버지는 아빠의 고등학교 중창단 생활을 이해하기 어려우셨을 거야. 아빠도 모르게 할아버지처럼 민이에게 공부하란 얘기를 모질게 했었어. 다시 한번 사과할게. 민이는 존재 자체로 귀한 아들이야.
민아,
오늘 예상치 않은 부동산 방문으로 아빠의 일정이 연기되었네. 네이버뉴스를 보지 않는 오늘 계획은 성공했지만 핸드폰을 4시간에 한 번 보는 것은 실패했어. 그러나. 괜찮아. 누구나 실패하고 실수하면서 배워가는 거니까. 민아, 탈북민과 함께하는 캠프 잘 다녀와. 나눔을 통해 배움과 성장이 있는 시간이 될 것 같구나.
오늘 밤엔 어려운 형편 가운데 할머니 몰래 치킨을 사주시던 할아버지가 보고 싶네.
"아빠, 보고 싶어요!"
아들.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