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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Jun 03. 2021

이것은 폭망한 신혼여행기

로망과 폭망 그 어디쯤에 있는 이야기




   아주 오랫동안 고민했다. 이 이야기를 발행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행 에세이 작가가 되는 건 내 오랜 꿈이었다. 막상 에세이를 다 쓰고 보니, 이것이 그냥 내 일기인지 일기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내 글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날, 나는 다시 한번 탈고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친구들과 함께 크로아티아 여행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노트북을 열고 외장하드에 있던 파일을 옮겨 담으려는 그 순간...! 외장하드에 있어야 할 글이 몽땅 사라졌다. 얼마 전 노트북이 이상해서 포맷을 여러 차례 했는데, 분명 외장하드에 파일을 옮겨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었다. AS 센터에도 가 보았지만 포맷을 여러 차례 한 뒤라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이 신혼여행기를 한 번 몽땅 날려먹었다. 신혼여행 자체도 폭망이었는데 여행기마저 폭망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리가 길을 건너기 시작하자, 차들이 멈춰 섰다.
바릴로체.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곳.
엘 칼라파테. 모레노 빙하.




  그래도 이대로 사라지게 놔둘 순 없었다.


  [단 둘이, 2주 동안, 30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서, 매일매일 비행기를 타는 여행.]


  살면서 이런 미친 여행을 다시 해 볼 수 있을까? 분명히 장담하지만, 우린 평생 이런 여행을 다신 해 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처럼 가장 젊지도 않을 것이고, 오늘처럼 가장 체력이 넘치지도 않을 것이기에. 폭망했지만, 우리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날들이었으며, 다시는 해 볼 수 없는 여행이었던 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로망이었고 최고의 여행이었다. 우리의 신혼여행이 그런 것이어서, 나는 기쁘다.




이 여행기가 당신에게 어떤 잔향을 남길지 감히 예상할 수 없지만,
읽는 동안만큼은 당신의 얼굴에 작은 미소 한 방울쯤 퍼트리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 여행기를 띄워볼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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