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ar Luna Aug 28. 2022

반장의 손편지

 

 M은 전학생이었다. 1학년 초에 다른 도시에서 전학을 왔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채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나에게 인사를 했던 첫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얌전해 보였는데 눈동자가 초롱초롱했다. M은 내가 맡고 있는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승낙했고 그로부터 3년간 내가 운영하고 있는 논술 동아리에서 계속 만났다. 여리고 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M은 강단 있는 학생이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정의로운 학생이었다. 발표를 할 때 또렷한 목소리로 조리 있게 설명을 잘했고 설득력이 있었다. 작문 실력도 뛰어났다. 긴 글을 집중력 있게 읽어내고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성적도 우수했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M이 3학년이 되었을 때, 내가 그 아이의 담임이 되었다. M은 고3 시절을 나와 함께 할 수 있어 기뻐했고, 나도 M의 담임을 맡게 되어 반가웠다. 학급 학생들의 신뢰를 듬뿍 받아 M은 반장으로 선출되었다.

 유독 잘 맞는 학생들이 있다. 그걸 궁합이 잘 맞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소중한지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매해 비슷한 수업을 하고 있는데도, 그런 학생들은, 유난히 잘 듣고 대답을 잘하며 나를 잘 따른다. 그러면 나도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하고 도움이 되려고 애쓰게 된다. M이 그랬고, 그해에 만났던 학생들이 대체적으로 그랬다.

 1학기 첫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3학년 첫 시험이라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출근하고 교실을 점검하러 학급에 가 보았다. 아직 등교 시간 전이라, 교실에는 일찍 온 두세 명의 학생들밖에 없었다. 그런데 모든 학생들의 책상 위에 작은 꾸러미들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게 뭐지?” 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사탕과 초콜릿, 그리고 편지가 들어있는 꾸러미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 반장이 했어요.” 일찍 온 학생이 자신의 꾸러미를 풀어보고 알려주었다. M이 35명의 학급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손편지를 써서 사탕과 초콜릿과 함께 모두의 책상에 두었다는 것이었다. 첫 시험에 힘내자는 간결한 내용이지만, 내용 모두 다르게, 친구들 이름 하나하나 직접 써 내려간 M의 정성에 나는 정말 놀라고 말았다. 공부하기도 바쁜 시기에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을까 싶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이건 담임이 해야 할 일인 것 아닌가?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걸 해내는 아이였다. 그날 우리 반 학생들은 모두 감동을 받아 M에게 감사를 전했고, 서로를 응원하며 시험에 응했다. 나는 M에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M은, 첫 시험에 반장으로서 친구들에게 힘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또 배웠다. 그 순간, 그 아이가 나보다 더 커 보였다.


 M은 안정적인 직업과 본인이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결국 본인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다. 방송 작가가 되어 사회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M은 작가를 많이 배출한 명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당당히 합격했고 이제 졸업반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조만간 M이 쓴 올곧은 글들이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을 믿는다. 그 아이의 소신과 행동력, 지혜롭고 사려 깊은 마음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더 빛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전 02화 위로 받는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