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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May 27. 2022

김소월과 이육사

 한 해가 끝날 무렵, 학교에서는 교원 평가가 실시된다. 정해진 기간 안에 동료 평가, 학부모 평가, 학생 평가가 온라인 설문처럼 실시되고 통계를 거쳐 점수화되어 각 선생님들에게 전달되고 점수를 받는다. 나는 내 평가의 점수에는 심드렁해져서 크게 신경을 쓰진 않지만, 단 한 부분, 교원 평가의 학생 서술형 의견은 늘 꼼꼼하게 읽어본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원 평가에서 객관식 문항에만 답하고 서술형 의견은 적지 않는데, 몇몇 학생들은 꼭 선생님을 지정하여 주관식 답을 적듯, 문장을 남긴다. 그 메시지들을 챙겨보는 이유는, 사소한 것부터 상처가 되는 것, 감동적인 것 모두 기억에 오래 남아 나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립스틱 좀 바르세요.’라는 의견은, 화장을 잘 하지 않는 내 모습이 학생들에게 추레하게 보였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선생님의 문학 수업은 최고예요.’라는 말은 수업과 업무에 지친 나에게 햇살 같은 힘이 되기도 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라는 의견과 ‘선생님의 목소리는 너무 잠이 와요.’ 라는 의견 사이에서는 깊이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의견이 있었다. 편지 형식의 꽤 긴 글이었는데, 기억 나는 대로 정리해 보면, ‘선생님, 수업 늘 잘 듣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도 수고 많으셨어요. 한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어요. 선생님, 왜 문학 시간에 시 수업하실 때, ‘여성적’, ‘남성적’, 이라는 말을 쓰시나요? 부드럽고 섬세하면 여성적이고, 강하고 저항적이면 남성적인가요? 그런 차별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였다.

  나는 그 피드백에 정말이지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교과서와 지도서의 표현들을 습관적으로 흡수하여 전혀 체에 거르지 않고 그대로 수업에 사용한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수업 시간에 나의 표현을 들으며 불편했을 학생에게 미안했고 사과하고 싶었다. 양성평등을 강조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을 쓰지 말자고 앵무새처럼 말하고 뒷짐지고 다니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표현들을 내 수업에서 사용하고, 중요하다고 밑줄을 긋고, 필기를 하게 했다.

 1학년 국어 수업이나 2학년 문학 수업에는 교과서 출판사에 상관없이 김소월과 이육사의 시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혼’, ‘산유화’, ‘먼후일’등과 이육사의 ‘광야’, ‘청포도’, ‘절정’ 등의 시는 단골 작품들이다. 또한, 본문이 끝나면, 두 시인의 작품이 나란히 제시되며 시적 분위기를 비교하는 학습 활동이 많다. 학생들은 ‘진달래꽃’이라는 시는 대부분 알고 있지만 시인 ‘김소월’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심지어 시인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 속에서 여성 화자의 입장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시인은 남자분이며, ‘시인과 화자가 꼭 같지는 않다’라는 설명을 나는 했다. 그리고, 이육사의 시와 비교하며, 김소월의 시는 ‘여성적’이고, 이육사의 시는 ‘남성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정리를 했다. 이런 내용의 수업을 셀 수 없이,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했을 것이다.

 나는 가르쳤지만, 학생들에게 배웠다. 정형화된 내 사고에 그대로 수용되는, 판에 박힌 지도서의 문구들을 기계적으로 내뱉는 나에게 학생들이 알려주었다.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자고,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거라고 학생들 앞에 서서 잘난 척 말하던 나는, 또 학생들에게 배운다. 시를 조각조각 잘라내어, 화자와 시적 상황, 비유법과 수미상관을 설명하며, ‘이렇게 배워둬야 나중에는 여러분만의 방식으로 문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라고 멋진 척 말했었다. 하지만 나야말로 아직도 책상 앞에서 교과서에 밑줄 긋고 있던 때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닐까.

 처음 교단에 섰을 때, 이형기의 시 ‘낙화’를 수업했다.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으며 수업 중 슬쩍 눈물을 훔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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