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ar Luna Jun 12. 2022

위로 받는 마음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살기는 어렵다. 늘 즐겁고, 유쾌하고, 밝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도 내면엔 슬픔과 드러낼 수 없는 아픈 사정이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오해를 하고 살아간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인이 박힌 어떠한 사정은, 아무리 몸이 아프더라도, 기분이 나쁘더라도, 학생들 앞에선 티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 수액을 맞으며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는 밝은 모습으로 “안녕, 얘들아!”하며 씩씩하게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게 가능하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현상을 ‘작두를 탄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교무실에선 끙끙 앓는 소리를 참으며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수업 시작 종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교실을 향해 걸어간다. 교실 문을 연다. 그 순간부턴 새로운 시간들이 펼쳐진다. 마치 작두를 탄 것 마냥 아픈 것을 잊고, 신들린 수업을 진행한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거침없는 판서. 50분이 지나 수업 종료 종이 울리면,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수고했어요.”라고 마지막 말을 한다. 그 말을 남긴 채 교실 문을 닫고 교무실로 돌아오면 나는 다시 50분 전의 실신하기 일보 직전으로 돌아간다.

 학생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 나의 부정적인 상태가 목소리로 드러나고 교실안에 퍼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참고 감췄다. 내 기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하며 수업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어떤 학생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가끔, 예민하고 다정한 학생들은 슬며시 “선생님, 오늘 좀 피곤해 보이세요. 쉬시고, 힘내세요.”라는 메모를 내 책상 위에 남기고 가기도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나는 점심 시간 교문 지도 당번이어서,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몸은 가라앉고, 눈꺼풀은 무거웠다. 점심 시간에도 쉬지 못하니, 온몸에 가까스로 남아 있던 기운들이 밑바닥까지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내 수업을 듣는 2학년 J가 지나가다 내 앞에 와서 말했다. “선생님, 피곤하세요?” 나는 아픈 기색이 드러났구나 생각하며, “응, 조금 그런 것 같네.” 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J는 이내 “그럼, 제가 선생님 힘나시게 춤춰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응?”이라고 내가 잠깐 놀라기도 전에 J는 내 앞에서, 친구와 함께 마구마구 몸을 흔들며 귀엽게 춤을 췄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다 쳐다보는 데도, 신나게 웃으면서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았다. 까무러칠 것 같았던 나는 어느새 밝은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J를 보고 있었다. 큭큭 웃으며, J를 보는 나는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정신이 확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 힘내세요!!”라고 말하며 J는 한바탕 짧은 공연을 마치고 씩씩하게 저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어쩌면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아픈 것을 꾹꾹 누르며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참고 버티고 있었던 마음 옆에는, 누군가 알아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같이 있었나 보다. 고마운 학생이, 그런 나를 알아보고 웃게 해줬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마음에 힘이 차올랐다.

  



이전 01화 플라스틱이 반짝였던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