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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유정 Sep 13. 2023

죽고 싶다는 마음은 정말 살고 싶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생은 살아 볼 만 한 것임을.

BGM : 다른가요? - 허회경





생애 처음 내뱉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생애 처음으로 배운 언어가 무엇이었을까.




나의 경우 "엄마"이다.




나는 "나"를 인식하기 전에 타인의 존재를 먼저 인식했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곧이어 나와 엄마가 다른 사람임을, 달라서 고유하고 존재하는 경이로운 축복을 얻게 되었음을 깨닫고 마침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배우고 생애를 살아가게 된다.




나는 그러나 주어가 타인에서 '나'로 옮겨 왔을 때에도 나는 '나'라고 지칭하면서 결국 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조연으로서 내 삶에 존재했다.


내 삶의 주인공이자 주어가 나라는 걸 안 뒤로부터 삶은 투쟁이 되었다.




실체가 있는 존재로서의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때때로 수치스워졌고, 종종 그 기분에 압도되었다.


압도되지 않은 나날에도 무의식 속에는 실체 하는 내가 부끄러운 마음이 실재하여, 숨을 쉬며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모멸감에 스멀스멀 잠식당하곤 했다.




별안간 어떻게라도 죽고 싶은 마음이 촘촘했던 날들에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지켜내리라 수없이 다짐했고, 숨 막힐 듯 버거운 날에도 스스로를 있는 힘을 쥐어짜 내 끌어안았다.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몹시도 강렬하여 존재의 수치심을 자꾸만 느끼게 되었다.




죽고 싶다면서 과연 그런가 들여다보면 너무도 잘 살고 싶어 하는 내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안의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하며, 서로가 서로의 존재와 두 눈이 마주치게 될 때마다 내 삶은 비밀이 늘어갔다.


누군가에게 너무 죽고 싶은데 너무 살고 싶다는 말을 꺼내 놓을 수는 없었다.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숨 한 번 한 번에 고민을 해 봐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비참함과 혐오, 애틋함과 연민은 꼬리 잡기를 하듯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따라다녔다.




이 세상에 태어난 나를, 어떻게든 살려고 발악하며 내 두 팔을 꽉 껴안고 내게 '괜찮다' 수없이 되뇌던 순간들에 죽을 용기조차 없는 나 자신을, 비난하고 또 비난했다.


살겠다는 용기를 낸 나한테 차마 건네선 안 되는 말들을 툭툭 건네면서도 살아내려는 마음을 뿌리내리려 애썼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짧은 물음에 답할 수 없어서 나 스스로를 몹시도 볶아치고 수치스러워하며 생애를 살아왔다.


죽음이 내 삶에서 멀어졌을 때에도, 무의식 속에서 내가 세상에 멀쩡히 존재하고 있음을 못 견뎌했다.




존재하는 나를 견뎌 줄 타인을 찾아 그래서 헤매었고, 내 존재가 견딜만한 것임을 타인의 실재를 통해서 입증해 왔다. 




내가 '나의 존재함'을 혐오하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동안, 내가 나를 견딜 수 없어 숨이 막혔던 것처럼 내 곁에 있는 그 누구라도 그렇게 만들 수 있었겠지.


그리고 누군가를 내가 숨 막히게 해 왔을지도 모른다.


나를 떠나간, 내가 떠나온, 내가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해 왔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타인의 존재에 기생하지 않고 나로서 존재하려 한다.


나는 이제껏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나를 견뎌내야 한다.




타인에게 넘겨주었던 주도권을 내게 가져와, 나의 실체를 다잡아 가려고 한다.


무의식의 밑바닥에 너무 오랜 시간 잠식되어 있던 부끄러움이기에, 때때로 근원적인 수치심이 다시 몰려 올 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지금 이 상태의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며 살아가기로 선택한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걸 떠올릴 것이다.




그 모든 수치심과 불안과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와서 살아남은 내가 대견하다.


때로는 설레하며, 때로는 왈칵 울어버리거나 벌컥 화를 내고, 때로는 주저앉았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어다니면서 묵묵히 삶의 무게를 살아내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몹시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앞으로는 그 모든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살아내겠다 다짐한 나 자신이 들춰볼수록 아름다울 것 같다.


아름다움을 곱씹다 보면, 경이롭고 경탄스러운 마음이 피어오르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기대는 끝내는 나를 배반한 적이 없으므로, 존재함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고 무릇 태어나고 자라고 죽어가는 자연의 섭리에는 모든 이치가 있다는 걸 굳게 믿게 될 것이다.




그때엔 내게 주어진 생의 기회가 감사해질 거라 생각한다.


꽉 끌어안아 품어 주고 싶다.




힘든 사랑이겠지만, 나를 있는 힘껏 사랑하고 싶다.


점점 어렵지 않은 사랑이 될 거라 믿으면서.




이제부터 진정으로 타인이 아닌 나를 주어로 살아보려고 한다. 쉽진 않겠지만.




이걸 깨닫기 위해 그 많은 사람과 비틀거리고 불안정한 나를 견디며 살아온 듯하다.


비 온 뒤 무지개처럼.


삶은 생의 끝이 가까워진 순간에도 붙잡아 숨을 쉬며 살아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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