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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Dec 10. 2022

<인생의 역사>, 신형철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신형철보다 정확한 문장을 쓰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의 말은 더없이 적확하고 명징하며, 유려하고 아름답다. 그의 이전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문학(글쓰기)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문법적으로 틀린 데가 없는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그의 또 다른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는 글쓰기의 단계별 준칙이 언급되어 있다. '첫째, 가치 있는 인식을 생산할 것. 좋은 글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취향이나 입장이 아니라 인식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뜻한 바를 백 퍼센트 담아낼 수 있는 문장이 써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하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공학적으로 배치할 것. 모든 문장이 제자리에 놓이도록 만들어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품은 이가 쓰는 글이 훌륭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의 문장이 내 마음을 관통할 때 나는 큰 진동을 느끼곤 한다. 책장을 넘기려던 오른손을 멈칫하고, 스스로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는다. 그것은 감동에 젖어든 한숨이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책에서 눈을 떼고 잠시 먼 곳을 응시하거나 하늘을 보며 그 깊은 전율을 수습한다. 이 일련의 행동이 자꾸 반복돼서, 그의 책을 읽는 속도는 늘 더디다.


이번 책 <인생의 역사>에서는 시를 읽는다. 그의 문학평론과 영화평론을 숱하게 읽었지만 시는 나에게 도전적인 장르인지라,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프롤로그에서 마음이 파르르 일렁였고, 에필로그에 가서는 내 영혼이 많이 울었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달았다.' 고 작가님에게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이 책의 발간 즈음에 저자에게 아이가 생긴 사실이 그의 글에 다소 큰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손으로 새를 쥐듯 조심하는 마음.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특히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열렬하고 숙연하다.


  시인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나'에 대한 조심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새처럼 다뤄야 한다. 새를 손으로 쥐는 일은, 내 손으로 새를 보호하는 일이면서, 내 손으로부터 새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내 삶을 지켜야 하고 나로부터도 내 삶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결국 아이의 삶을 보호하는 일이다. 아이를 보호할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므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이에게 가해자가 되고 말 것이다. 이제 네 이야기를 너에게 할게.

  그러니까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경고했다는 이야기. 조심하라고, 네가 나를 필요하다 느끼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게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 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은 끝났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지. 그래서 내 어머니는 두 사람 몫을 하느라 죽지도 못했어. 너의 할머니처럼,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

p.26



에필로그에서는 박준 시인을 다룬다. 정확히는 박준의 시간을 다루는 태도에 주목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시는 과거를 회상하는데,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상황'만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에 도착한다고 말해야 할 상황'으로 그린다. '과거는 더 먼 과거로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지금 이곳으로 거슬러온다는 것. 그러한 맥락에서 지금 이 현재도 언젠가 미래로 이어져갈 것이 아닌가? 현재를 살면서도 미래를 염두에 두는 이 마음은 '돌봄'과 연결된다.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p.317


이제까지의 내 삶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돌보는 사람이 되기 전과 후라고 말한다. 내가 없으면 죽거나 아주 크게 잘못될 존재가 생기면서, 나는 필연적으로 돌보는 자가 되었다. 밤에는 '내일 아침에 뭐 먹일지' 생각하다 잠들고,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다가도 '저녁밥은 뭐 먹일지'를 틈틈이 고민한다. 나는 늘 아이들의 미래를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마 나의 부모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 침대에 새로 깔 침구를 사러 가서 어떤 걸 사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이 색깔을 사주면 어떤 표정이 될까. 저 소재는 촉감이 괜찮으려나. 그때 문득, 어릴 적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을 때 엄마가 나의 새 침대에 깔아줬던 베딩이 떠올랐다. 아, 엄마도 그때 어떤 이불을 살지 고민했겠구나. 젊은 그녀는 나의 미래를 살았을 테고 아마, 나이가 충분히 많아진 지금도 그러할 테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당혹스럽게도 눈물이 났다. 난데없이 이불 쇼핑을 하다가 울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찾은 이 책의 주제는 결국 사랑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신형철의 예전 글에서 우세했던 냉철함이, 온화함을 한 겹 둘렀달까. 직접 지은 아이 이름의 의미를 독자에게 설명하고 그 아이를 위해 이 책을 엮는다는 작가의 서문에서,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어찌할 바 모르는 이의 마음이 읽혔다. 정확하고 아름다운데, 따뜻해지기까지 했으니 나는 이제 그의 글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의 진실은 다음 문장에 있다.
 "Amo: Volo ut sis."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사랑은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기를 원하는 단순하고 명확한 갈망이다. '너는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아모 볼로 우트 시스. 세상이 고통이어도 함께 살아내자고, 서로를 살피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는 유일한 가치라고 말하는 네 개의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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