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왜 엄마말을 잘 안 듣는지 알아?”
공자왈 맹자왈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마다 싫다고 말하던 큰 아이가 물었다.
“왜 안 듣는데?”
“내가 알았다고 하면 지는 기분이 들거든.”
옳고 그름을 가르칠 때, 특히 뾰족하게 반응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최대한 객관적 이유를 들어 설명하려던 의도가 아이에겐 '무시'로 다가왔다니 충격이었다.
빠듯한 살림에 공부 뒷바라지만도 힘든 시절을 통과했다. 매일 지친 얼굴로 퇴근하는 부모님께 투정은 불효였고 순종이 미덕이라 믿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조금씩 나의 목소리를 내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표현의 욕구를 억누르며 살았는지 깨달았다. 아이가 나처럼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소통하길 바랐다. 스스로 꽤 괜찮은 엄마라 자만했는데 소통 대신 '지는 기분'을 느꼈다니 혼란스러웠다.
이번에도 길을 잃을 때마다 지혜로운 선택을 하도록 도운 그림책 한 권을 펼쳤다.
《고 녀석 맛있겠다》를 쓴 작가 미야시니 다쓰야의 그림책 《말하면 힘이 세지는 말》에는 늘 별나게 행동하고 엉뚱한 말을 하는 괴짜 눈썹 아저씨가 등장한다. 아저씨는 조금은 황당하고, 쓸데없고, 바보같이 여겨지는 말들을 한다. 프테라노돈을 타고 빛나는 달까지 갈 거라든지, ‘포기하지 않아요’를 외치며 티라노사우루스의 입에 방귀를 뿜는다. 아저씨는 느긋하게 날며 멋진 경치를 구경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무엇이든 행복을 주는 일들을 찾는다. 누구든 상냥하게 대하고, 자신의 아픔만큼 타인의 슬픔에 공감한다. 아저씨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행복해지는 것. 눈썹 아저씨의 문장을 천천히 소리내어 읽는다. 그저 소리내어 말했을 뿐인데, 어쩐지 힘이 솟는다. 말이 주는 힘, 힘이 센 한 마디를 그림책을 통해 배운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눈썹 아저씨처럼 “나에게 힘을 주는 말들”을 하나씩 써 보았다.
너는 존재만으로도 힘이 돼.
난 언제나 네 편이야.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난 널 응원할 거야.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란 없어.
넌 너 자체로 빛나.
느려도 괜찮아. 천천히 걷자.
네가 속상하면 나도 속상해.
울고 싶을 땐, 실컷 울렴.
지쳤을 땐 쉬어가도 괜찮아.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어.
단 일초의 시간도 돈으로 살 수 없어.
넌 소중해. 사랑해.
그저 쓰고, 말하는 것만으로 힘이 솟는 말들. 마음 어딘가에 몽글몽글 설렘이 피어오른다. 말의 힘을 믿는 나는 나에게 먼저, 사랑하는 이에게 자주 입이 닳도록 말해준다. 기운 빠지는 말 대신 힘이 세지는 말을 영어회화처럼 연습한다. 어느 날 믿음으로 자란 말들이 행동과 삶으로 꽃필 순간을 상상한다. 행복하다.
아저씨 친구는 말해요.
"언제나 무섭게 해야 돼. 누구라도 봐주면 안 돼."
하지만 눈썹 아저씨는 달라요,
"아니야. 상냥해야지. 너도 다른 사람이 상냥하게 대해 주면 기분 좋잖아.".
- 《말하면 힘이 세지는 말》ⓒ 미야시니 다쓰야 | 책속물고기 -
작가소개
글.그림 미야니시 다쓰야
1956년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태어났다. 일본대학 예술학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인형 미술가와 그래픽 디자이너를 거쳐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걸>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그림책상을 받았고,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로 일본 그림책상 독자상을 받았다. <고 녀석 맛있겠다> <나는 티라노사우루스다> <진짜 영웅> <넌 정말 멋져> <울보 나무> <찬성> 등을 지었고 개성 넘치는 그림과 가슴에 오래 남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