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나무』 | 숀 탠 | 풀빛
내 안에 고인 슬픔을 알아채도록 도운 그림책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2015년이 내겐 그랬다. 근무지 이전으로 남편 홀로 경기도에 집을 구해 머물렀고, 타시도 전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부산에서 거제로 출퇴근했다. 이제 갓 세 살배기 아들은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일상을 견뎠던 시절이었다. 그 해 봄, 암수술로 몸이 약해진 엄마께 아이를 보살펴주시도록 부탁할 때도, 밤새 아빠를 찾아 울던 아들을 달랠 때도 그저 미안한 마음이 앞서 나를 돌볼 겨를은 없었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랐다.
그 시절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잠든 아이 얼굴에 한참동안 머물던 시선을 거두고 돌아 누울 땐 어김없이 얼굴과 맞닿은 베개 면이 축축했던 감각만 생생하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
매일 생각했다. 깊은 물속에 잠겨 일상을 잊고 고요히 숨죽이고 싶다고. 새로운 것에 자주 설레고, 흥분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있었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새로 프로그래밍 된 내게 일상은 따분하고 지루했다. 아무런 열정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었다. 주책없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차오른다. 맞아, 그건 우울이었다. 가슴이 뻥 뚫린 듯 공허했고, 아이가 빠져나간 자리에 커다란 무언가가 함께 빠져나간 게 분명했다.
'괜찮아. 지금만 버티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거야.'
하루에도 수백 번씩 ‘괜찮아’ 주문을 되뇌었다. 괜찮아야 했다. 아이에게 절망의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아침마다 웃는 얼굴을 그려 넣었고, 누군가 물으면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거짓된 자아, 위선의 탈을 뒤집어쓴 자신이 누구보다 밉고 싫었다.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나를 믿지 못했듯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문득 바로 앞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불행을 이야기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로를 보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힘내!’라는 말을 건네거나 한동안 연락을 주저하거나 비슷비슷한 반응들이 되돌아왔다. 예측 가능한 반응, 위로인데 곱씹으면 상처가 될 말들이 오갔다. 말하지 않으면 편했지만 죽은 아이를 복기하는 일이 내겐 아이를 기억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여겨졌다.
이듬해 봄, 경기도로 거주지를 옮기고 육아휴직을 했다. 갑갑한 마음을 날려버리려는 듯 자주 산책을 나갔다. 유난히 홀씨를 흩날리며 사방에 피어있던 민들레를 보며 예쁘다고 말하니 첫째가 예쁘고 탐스런 민들레꽃 한 송이를 꺾어 건넸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야.” 민들레를 보니, 새내기 교사 시절 나를 버티게 해 준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류시화,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평범한 남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정원을 꾸미며 살았다. 정원사에게는 한 가지 골칫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민들레였다. 뽑고 뽑아도 계속 자라나는 민들레를 없애기 위해 흙도 바꾸고, 제초제도 뿌리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소용없었다. 방법을 찾지 못한 정원사는 마지막으로 정원 가꾸기 협회에 도움을 청했고 얼마 후 그의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뜻밖의 답변에 정원사만큼 나도 놀랐다.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충격이었다. 이후 나는 가르치던 학생들의 장애를 교정하기 위해 애썼던 관점을 바꾸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도 바뀌지 않던 학생의 고유함과 특별함을 인정하고 보듬으려 애썼다. 이건 교육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도망치거나 제거하려 할수록 끈질기게 쫓아오던 우울이 나를 집어삼킬까 두려웠지만 이 감정을 외면하거나 덮어두어선 안 됐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겼을까 수없이 신을 원망했던 마음을 멈췄다.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를 멈추었고,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게 내버려 두었다. 내 감정의 정원에 잡초처럼 피어난 우울을 보듬었다.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에 나온 문장이다. 불행은 언제 어디서든,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올 수 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몰랐다. ‘절대로’란 단정은 오만이었다. ‘왜’란 질문을 거두고, ‘어떻게’로 관점을 바꾸었다. 우울과 절망을 끌어안고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다시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소녀의 방에 자란 빨간 나무처럼 작은 희망의 싹을 틔웠다. 아이를 만나는 여정은 무척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할 수 있다.
‘다시 만난 아가, 너를 낳으려 노력했던 그 모든 애씀의 시간들’이라고.
작가소개
글.그림 숀 탠
1974년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주의 프리멘틀에서 나고 자랐다. 혼자 그림 공부를 해서 16살 때부터 공포 소설, 공상 과학 소설에 삽화를 그렸다. 대학에서 미술과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1992년 국제미래출판미술가상을 수상한 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애니메이션 <월-E>dkh <호튼>의 컨셉 디자이너로 일한 바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쓰고 그린 작품 <잃어버린 것>으로 볼로냐 라가치 명예상을, <빨간 나무>로 CBCA 명예상을, <도착>으로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을 받았다. <여름의 규칙> <매미> <이너 시티 이야기> 등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