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령 Jun 21. 2020

3개월의 제한적, 자발적 백수생활을 어떻게 채워갈까.

5주간의 봉쇄령 이후 자발적으로 선택한 백수생활

봉쇄령이 지난 후, 다시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나의 시급은 단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나의 시간+노동의 대가였다. 시간과 돈을 바꾸는 이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나에게 내 시간, 내 하루에 대한 자율권이 없다는 것에 큰 패배감을 느꼈다. 어째서 이러한 감정을 이제야 느끼게 된 걸까. 


그래서 3개월이라는 제한적, 자발적 백수생활 동안 지난 10년간 내가 놓쳐온 것들에 시간을 할애해볼까 한다. 책도 질리도록 읽어보고,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가 생기면 온라인 코스도 찾아보고, 글도 꾸준히 써보고, 새로운 요리에도 도전해보고, 집 인테리어도 바꿔보고,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등.. 


물론, 나도 이 모든 것들은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으로 하루를 꽉꽉 채우는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재밌는 책을 읽다가 출근시간에 쫓겨 덮어야 하는 그런 부담 없이, 글을 써야 하는데 피곤함에 못 이겨 침대로 직행하는 일 없이, 쉬는 날 집안일을 하고 나자 오후 4시라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아쉬움 없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쉽사리 내리지 못할 결정이었을 테지만, 그래도 아직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기 때문에 이렇게 인생에 쉼표를 찍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어떤 길로든 올해 안에는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시작하고 싶다. 백수생활이 끝나기 전에 생활비라도 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건 알고 있다. 특히 아직 '뭘'로 돈을 벌지 모르겠는 이런 상태에서는.. 그래서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평범하디 평범히 남들 다 따르는 코스를 밟고 살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야자를 하고 독서실에서 남은 공부를 채우며 아침 8시에 나와 밤 11시, 12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쳇바퀴도는 생활을 반복했다. 서울로 대학교를 가기 위해 성적이 맞는 전공을 선택했고 딱히 큰 목표도, 전공에 대한 애착도 없이 20살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홍익대학교에 가면서 여러 지역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고,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유행에 민감했고 노는 것에 열정적이었던 20대의 초반을 홍대에서 보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남들은 시간을 내서 놀러 오는 '홍대'에서 6년을 보내며 빠르게 변화는 유행을 몸소 느꼈고 다양한 문화생활에 노출되어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대학교 1, 2학년 때 망쳐놓은 학점은 갑자기 노력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토익 점수, 한국사 자격증, 컴퓨터 자격증 등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쓸모도 없는 자격증들을 따기 위해 참 노력했다. 몸이 부서져라 아르바이트하며 번 돈을 교재며 시험비에 투자했었다니... 그렇게 누구도 정답이라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하고 있던 그 과정들을 밟느라 정작 중요한 시기에 나 스스로를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이러한 과정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 곳에 있는 것이니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쉬운 시간들이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다. 


대학교 생활을 뒤돌아보면 항상 바빴던 것 같은데, 막상 손에, 기억에 남는 게 많이 없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대학교도 전공도 개인의 선택으로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문제인데, 우리 사회는 '취업'과 '학교 레벨'에 집중해 있는 점이 아쉽다. 또, 대학교도 고등학교의 연장선처럼 필수적인 단계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19살 ~ 21살 사이의 독일 워홀러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대학교로 가기 전 갭이어를 활용해 뉴질랜드에 왔다. 이들은 1년 혹은 그 이상의 여행 경비를 본인이 스스로 마련하면서 사회생활을 경험한다. 또 자신과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직접 접하고 여러 국가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야를 넓힌다. 1년의 워홀 기간 동안 본인이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성찰할 시간을 갖고 나면 독일에 돌아가 대학을 가거나 호주, 아시아, 아메리카 등 다른 나라로의 여행을 계획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간이 쉴 틈 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그 사이 본인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독일 친구들을 보며 성인으로 가는 인생의 전환점에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이 사회적으로 이상하지 않은, 별나지 않은 문화가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10대들에게도 중요한 시기에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본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20대 중반까지는 사회적으로 암묵히 인정받는 안정된 그 길을 밟지 않는 것이 혹은 그 길에서 1,2년 뒤쳐지는 것이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30대를 시작하는 지금 바라보니 그건 단지 1,2분의 차이였을 뿐, 조금 늦게 시작해도 본인의 의지로 만든 선택들은 반드시 의미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26살의 나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27살의 나는 1년 전의 나를 생각하며 '그때라도 시작했어야 했는데..' 생각했다. 28살에도, 29살에도 같은 반복이 연속이었다. 그래서 내년의 내가 올해를 바라보며 같은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는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기에 슬프게도 나는 오직 늙어갈 일만 남았기에, 하루하루를 꽉 채워서 살아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5주간의 봉쇄령 이후 자발적으로 선택한 백수생활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