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지우는 편이 낫겠다
1. 오래된 기록을 뒤지다가 20년 전의 일기를 찾았다.
2. 굳이 읽고 싶지는 않았는데, 찾고 있는 내용이 있었기에 샅샅이 읽는 수밖에 없었다.
3. 어투는 명랑했으나, 그 안에 짙게 깔려있는 불안이 확연히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4. 다른 사람의 인정과 애정에 한없이 흔들리던 때였다.
5.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애써 부인하며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일기에 남아있었기에, 끝까지 읽기가 힘이 들 정도로 안쓰럽고 부끄러운 감정이 차올랐다.
6. 그때의 일기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그 감정들이 한없이 유치하게 느껴질 만큼 지금은 ‘어른스러워’ 져서인지, 아니면 아직까지 없애지 못한 불안과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을 들켜버려서인지 모르겠다.
7. 나에게는 여전히 인정과 애정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8.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혹은 자기 중심을 잡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머리로 배워 알고 있어서, 예전만큼 대놓고 외부의 인정을 바라지 않을 뿐이다.
9. 혹여나 내가 신변 정리를 하지 못하고 돌연사할 경우를 생각해서 지금 이 일기들을 확 다 지워버릴까 하다가, 일단 그냥 둬 보기로 했다.
10. 지금 이 글도 20년 후엔 맨 정신에 읽지 못할 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