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길, 목표를 잃고 방황할 권리
가장 먼저 배운 스페인어는 '오렌지 주스'와 '맥주'였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것들인데, 이 곳에서는 머리가 깨질 듯이 시원한 오렌지 주스와 맥주가 없는 하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늘에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쉴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걷다 지친 순례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오렌지 주스나 맥주를 하나씩 쪽쪽 빨고 있는 걸 보면 끈끈한 동지의식(?) 같은 게 느껴진다.
두 번째 퇴사를 하고 약 한 달 정도 스페인의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다녀왔다. 퇴사 날짜가 정해지고 한껏 신나서 어딜 여행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내가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대리만족이나 하게 네가 다녀와라'는 친구 말을 듣고 덜컥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시간이 딱 한 달 정도 있었기에 순례길 전체를 걷지는 못하고, 부르고스(Burgos)에서부터 출발했다. 500km 가까이 되는 그 길을 걸으며 앞으로 내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주 6일 동안 책상과 한 몸이 되어 일하는 삶을 살다가 느닷없이 하루에 20km씩 걸어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운동이라고는 출근길 지하철역까지 10분, 점심 식당까지 10분 걷는 것밖에 하지 않았으면서 (그나마 새벽 퇴근할 때는 택시를 탔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신이 났다.
그 자신감은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어깨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등이 찢어질 것 같고 발목도 시큼 거리는 것이 온몸을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분명 처음에는 가방도 멘 듯 만 듯 가볍고 발걸음도 활기찼는데, 그 사이에 누가 내 배낭에 들어가 앉았는지 무거워서 미칠 것 같았다. 온몸이 고통에 울부짖고 있었다.
인생에 대한 고민은커녕, 걷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라고는 '무거워 죽겠다', '발 아파 죽겠다', '더워 죽겠다', '목 말라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 밖에 없었다. 인생 따위를 고민하기에는 지금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너무나 컸고, 현실적이었고, 시급했다. 오직, 다음 마을은 언제 나타날 것이며, 나는 언제 맥주를 마실 수 있을 것인가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데에 나의 모든 세포가 집중해 있었다.
도대체 나는 왜, 무엇을 위해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어딘가 휴양지에 편하게 누워서 대낮에 칵테일을 마시고 있지 않은 것일까. 이 여행을 예약할 때 나의 이성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렇게 개고생을 하며 다니던 회사를 드디어 때려치웠는데, 나는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고작 하루가 지났고 500km 중에서 20km를 걸었을 뿐이었다.
매일 하루에 약 20~30km씩 5~7시간에 걸쳐 걷는다. 예외적으로 10시간을 걷는 날도 있지만 보통은 눈 뜨자마자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걷기 시작해서 대낮에 해가 한참 뜨거워지기 전 그날의 걷기를 종료한다. 대충 오늘은 어느 마을까지 가서 짐을 풀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길을 나서고,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한 두 마을 정도 더 가고 덜 가기도 한다.
걸으며 마주하는 풍경은 내가 제자리를 걷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변화가 없다. 몇 시간을 걸어도 똑같은 풍경 안에 있다. 안 그래도 힘든데, 풍경도 이러니 정말 무념무상인 채로 터벅터벅 걷는 것에만 집중한다.
점심 즈음 목적지에 도착하면 숙소에 짐을 풀고 땀범벅이 된 몸을 씻는다. 그러고 나면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반나절이 고스란히 남는다. 가장 큰 일이자 유일한 미션은 그 날 입은 옷을 빨아서 널어놓는 것뿐이다. 빨래를 마치면 마음껏 빈둥거릴 자격을 얻는다. 생산적인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어도 그대로 괜찮았다.
서울에서는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주말에 할 일이 없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자기 계발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럴듯한 취미라도 있어야 할 것 같고, 평일에 못 본 친구들과도 부지런히 약속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해야 할 일 투성인데, 계속해서 일을 만들어냈다. 이 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바쁜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한 번도 마음 놓고 빈둥거려 본 적이 없어 그런 시간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알지 못했다. 내가 지쳤다는 것,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 역시 애써 무시하며 살았다. 긴장이 쌓이고 쌓여 몸이 먼저 반응을 할 때가 있는데, 그제야 많이 힘들었다는 걸 깨닫는다. '아닌데, 난 괜찮은데'라며 나를 몰아세워왔다는 것도 그제야 알아차린다.
컨디션이 안 좋아 이를 악물고 '제발, 제발'을 외치며 힘겹게 몸을 질질 끌고 걷는 날도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하루에 20km 이상, 7시간씩 쉬지 않고 몇 주간 걸어본 적이 없으니까 자신의 몸이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도중에 포기해야 하는 사람도 있고, 잘 견뎌주는 몸에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어느 정도 신체의 한계를 맞닥뜨리고 타협점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자신의 몸을 좀 더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온몸 구석구석 통증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었다.
걸으면서 내 몸에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보살피는 법을 배우게 됐다.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만'이라고 할 때 멈춘다. 내 몸이 잘 봐줘야 다음 마을에 무사히 도착할 수도, 고통에 덜 시달리며 잠을 잘 수도,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도 있는 거다. 이곳에서는 몸의 한계를 시험하거나 사소한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 고분고분 몸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잘 돌봐주는 내가 된다.
걷다가 하루는 느닷없이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슬픈 생각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닌데. 이런 반응에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감정이 삐져나오는 대로 가만 내버려 두었다. '울면 안 돼', '힘들면 안 돼', '그런 생각하면 안 돼', '실망하면 안 돼', '화내면 안 돼' 등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를 정확히 헤아려보기도 전에 틀어막기 바빴다. 앞에도 뒤에도 보이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걷던 이 날 나는 길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 길을 걸으며 격렬하게 깨달은 사실 하나는 그동안 나에게 소홀했다는 점이다. 살면서 좋은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남겨두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당장 제일 좋은 것을 나를 위해 꺼내어 놓기로 했다.
산티아고 길을 여행하는 이들을 순례자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하루 동안 걷는 거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계속 마주친다. 20대 청춘도 있고, 은퇴하신 분들도 있다. 혼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친구끼리, 모녀가, 연인끼리 온 경우도 있었다. 걷게 된 사연도 가지 각색이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그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길이 가진 묘한 분위기에 오랜 시간 알던 사람들에게도 하지 못한 얘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나는 좀 더 여유롭고 유쾌한 사람이 된다.
그래도 길을 걷는 것은 각자의 시간에 따른다. '우리 내일 같이 출발해서 같이 걷자'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 혼자 일어나 묵묵히 걷다 보면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한동안 같이 걷다가 또 각자의 시간에 맞춰 누군가는 먼저 가고 누군가는 좀 더 휴식을 갖는다. 그러다 짐을 푼 숙소에서 다시 그 얼굴을 만나면 즐거워하며 같이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같은 길을 계속 걷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마주칠 것을 안다.
하지만, 다시 만날 거라 생각하고 인사도 안했는데, 언젠가부터 엇갈려 다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대부분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이대로 헤어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관계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것인데, 그걸 알면서도 함께 하는 동안에는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른다. 만나고 헤어질 타이밍을 결정할 힘이 없는 우리는 단지 지금 이 순간을 100%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마음속에 되새겼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군데군데 노란 화살표가 길을 안내한다. ‘이 길이 맞나?’하는 불안감이 드는 순간 노란 화살표를 만나면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른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이런 화살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을 때, 노란 화살표로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같은 길을 걷는 앞사람 또는 뒷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도할 수 있다면….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걷는 동안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기분일까 종종 궁금했다. 한 달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가까워지기 위해 쉼 없이 발걸음을 옮겨온 바로 그곳에 도착하면 무언가 이루었다는 성취감이나 감동, 행복, 슬픔, 이런 감정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드디어 산티아고 입구로 들어서서 대성당의 꼭대기가 눈에 들어왔는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광장에 도착하면, 대성당의 전체 모습이 내 눈앞에 드러나면, 거기서 배낭을 딱 내려놓고 끝이다! 를 외치면, 그러면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마침내 광장에 도착했을 때 나의 감정은 한 마디로 당혹감이었다. 매일 산티아고에 가까워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새벽부터 녹초가 될 때까지 걸었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끝’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고민하던 문제의 답도 찾지 못했고,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람도, 특별한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정말 끝인가? 여기가 내가 그렇게 오고 싶었던 곳인가?
사흘을 그곳에 머물면서 매일 산티아고 광장에 가만히 앉아 그동안의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 순례길을 걷는 그 과정 자체를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미션인 것처럼 매달렸다는 걸 깨달았다.
살면서도 늘 그렇게 목표를 찍어 놓고 맹목적으로 달려들진 않았나. 수능을 치고, 취업을 하고, 승진을 위해 직선으로 내달리면서 내 앞에 던져진 관문들을 재빨리 통과하려고 애썼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인생의 '숙제'들이 버겁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솔직히 보고 달릴 목표가 있어서 안도했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겠다.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되는 시간을 감당하는 게 할 일을 꾸역꾸역 처리하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에게 더 중요한 건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순간이 아니라 노란 화살표가 인생에서 잠시 사라지는 구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패닉 하지 말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는 것, 혹은 필요하다면 마음껏 방황하거나 잠시 쉬어가는 법을 배우는 것. 조급한 마음에 다른 사람의 꿈을 내 것으로 착각하지 말고, 내 안에 명확한 대답이 떠오를 때까지 차근차근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 방향을 정하고 발을 내디뎌야 할 순간이 오면 노란 화살표를 만들어 낼 힘이 내 안에 있음을 믿고, 얼마간은 목표를 잃고 헤맬 권리를 갖는 것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일상의 쳇바퀴에서 잠시 떨어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서울에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달렸던 것 같다. 내 꿈인지 남의 꿈인지 모르는 것을 좇으며. 내 몸과의 대화, 운동, 휴식, 즐거운 사람들과의 만남, 웃음, 조용함, 정성스러운 식사시간, 단순함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 지나고 보니 산티아고는 나 자신에게 주는 큰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