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편의점이 새로 생겼다. 자본주의 시대를 대변이라도 하듯 꽤나 크고 널찍한 데다가 앞에는 전용 주차장까지 있는 단독건물이다. 새벽 당직길에 그 옆을 지나가는데 이른시간이긴해도 종종 누군가는 주차를 하고 담배를 태우고 있거나 편의점 창문 안으로 뭔가를 먹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터를 나가기 전 본인만을 위한 일종의 의식행위일까. 편의점 건물 앞에는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멀리서봐도 눈에 확 띈다. 우리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단어들이 써 있어서 그런가보다.
도시락, 커피, 치킨.
저 세 단어를 보고 어쩐지 마음이 헛헛해졌다. 바쁜 현대인의 시선과 발길을 사로잡기 위한 단어가 저 세개라니.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한다거나 많이 찾은 상품들로 구성해 놨을테니 말이다. 도시락으로 끼니를 재빠르게 때우고 카페인 없이는 버텨낼 수 없는 하루를 커피로 충전한 뒤 나에게 주는 보상 겸 치킨으로 마무리할 하루를 떠올렸다. 나쁘진 않았다. 어딘가 모를 공허함이 따를 뿐이다.
며칠 전 앓아누웠던 게 떠올랐다. 말 그대로 아파서 회사에서 조퇴하고 하루종일 누워있었는데 너무 서글펐다. 아픈 내 몸은 더 이상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과연 일터에서의 구성원들이 내 아픔에 암묵적이나마 얼마나 공감을 해 줄지도 의문이었다. 누군가 아프면 그 사람의 업무가 오롯이 내 몫이 되어버린다는 의식만이 팽배한 오늘날이라서 그런데, 아픈 것도 눈치가 보인다는 게 서러웠다. 예전같으면 반나절 아프고 말 것을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었음에 아픔의 정도가 유난히 길게 느껴져 더 마음이 아파왔다. 어쩌면 건강도 주변사람도, 어떤 것을 점점 잃어가는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실감이 됐다. 나이에 비해 아주 걱정이 빠른 편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오늘날의 편의점은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다. 너무 가변적인 나머지 영업을 포기하는 점주가 속속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택배기능이나 간단한 조리의 기능도 해야하고 날마다 신제품이 쏟아져서 손님들이 찾을 때마다 설명도 해줘야 한다. 휴대폰에 있는 00페이 기능을 쓴다고 할 때 마다 그것도 수용해줘야 한다.
너무나도 속절없이 변해버리는 풍경 뒤에서 나는 조용히 병적으로, 종이 책을 손에 쥔다. 뭐 하나라도 천천히 오랫동안 동행할 친구가 필요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