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여름을 걷는 내게
도리어 그 여름을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 너에게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고
그 여름의 이유가 내게 남아있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떠나
여름 이슬 한 줌정도의 재가 되어 영영 사라질 텐데 말이야.
그러니 내가 이 여름을 살게 된 까닭은
한 여름밤의 지친 달을 사랑했기에
나는 나의 사랑하는 너마저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파랑의 첫 만남을 함께 마주했던 그 대화의 끝에서 우린 서로의 거울 속에 입맞춤도 하지 못한 채
한 여름의 핑계가 서린 초록의 녹음에 잔뜩 취해버렸고
그 새벽의 끝에서야 나는 너를
그리고 너는 나를
했고 또 했다.
지나치게 아프고도 그리운 여름 내 사랑이었다.
처절한 미련이었을지라도 내게는
하다-라는 움직임의 시작과 끝은 결코 너였다
그 까닭이 너였고 그 내일이 그 꿈이 내게는 너였다.
깊지도 길지도 않은 나의 서랍 속에 너를 담아내기엔
내 서랍은 작았다 나는 여전히 좁았다
겨울을 홀로 살아내기엔 딱 알맞은 정도였다고,
애써 나를 달래지만 턱없이 좁기만 한 나의 어린 서랍에게.
괜찮아-
우리만이 사랑할 수 있는 커다란 여름이잖아
그러니 사랑해 보자 우리
이 여름을-
하지만 내게 그 여름은 너무나도 벅차기만 해서,
담고 또 담아내도 서러이 넘쳐흐르기만 해서
내 작은 서랍을 모두 버리고 나서야 껍데기뿐인 나의 몸체는 오늘의 온전한 여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 여름은 왜 이리도 나를 울리는 건지,
여름 내 녹음이 파랑에 잠겨가고 있는 것을 알기는 하는지.
그날의 기억
소리 없는 발버둥
손 끝에 맺힌 라일락 향기
햇살의 따스한 버릇
녹아내리던 겨울
다시 숨을 내 쉬던 겨울
그런 여름을 감히 사랑하려는 겨울
그런 우리만이 나누던
습기만이 가득한 여름
그 안의 무더운 새벽.
그 울음마저도 달래는 나의 여름을 나는
미워하고도 다시 사랑을
하고 또 하고.
그럼에도 다시 여름
불구하고 나의 사랑하는 여름
그 하늘을 채워놓은 수만 가지의 이유를 막론하고서
기꺼이 사랑을 하고 싶은 나의 여름.
영원을 살던 헛된 물음을 저 깊은 파랑에 떠나보내고
우리는 그저 사랑만 하면 좋겠다-
여름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던 푸른빛 자장가.
그 끝은 제법 무더웠던 새벽하늘,
푸른 꿈을 꾸는 나의 사랑하는 여름이었다.
< 그럼에도 다시 여름 > By 초록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