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은 언제나 선이 끊긴 전화기처럼 불통이었다. 수화기를 들고 수많은 말을 쏟아내고 갈구했으나 번번이 먼저 끊겼다. 오기를 부리며 수십 번 재다이얼을 돌렸고, 버튼에 자국이 남도록 눌러댄 번호임에도 고쳐 누르고 또 눌렀다. 곧 비참해질 내 간절함이 두려워 발을 동동 굴렀고, 고작 간결한 부재중 전화 메시지로 남아야 하는 수많은 사랑의 말들이 아까워서 악다구니를 썼다. 결국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전화기는 쓸모가 없고, 목적지를 번번이 벗어나는 종이비행기는 마침내 이곳저곳 구겨져 쓸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되었든 도달하지 못하는 잰걸음은 애초에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랑은 꼭 예견된 것처럼 쉽게 버려졌다. 하필이면 매번 힘주어 눌러가며 갈구한 탓인지 사랑이 지나간 자리마다 지문은 상흔으로 남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고, 남은 것은 수많은 지문들이 마음에 만들어 놓은 거대한 웅덩이뿐이었다. 주기적으로 슬픔이 태풍처럼 몰아치면, 원래는 막힘없이 흐르다 결국 증발해야 했을 것들이 그곳에 고여 너무 쉽게 썩어갔다.
왜 너는 자꾸 내 슬픔을 길어 올리고 싶어 하니, 하고 당신에게 묻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이 웅덩이의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어. 잊힌 보물이라던가 예쁜 성으로 가는 길이라던가 네가 기대할 만한 근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수면 아래에서 썩어가는 내 악다구니쯤이 남아있지 않겠느냐며 시니컬하게 혼자 빈정거렸다. 그만두라고, 애초에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을 줄 수 없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면서도 부득부득 호의는 받지 않겠다고 애썼고, 그러다가 어느 날엔 날카로운 말들로 아예 당신이 내린 두레박 줄마저 끊어버렸다. 그다음 날이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당신은 조용히 웅덩이 옆에 꽃만 한 송이 심어 두고 돌아갔다.
달랑 한 송이로 시작된 그 꽃은 계절을 가로지르며 당황스러운 속도로 꽃밭을 이루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이야, 하고 화를 내기엔 당신의 행동이 너무도 무해한 것이어서 나는 눈만 멍청하게 뜬 채 예상 못한 개화기를 똑똑히 목도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더 흘러 그곳에는 이제 나비가 날고 벌이 꼬여들었다. 꽃향기가 진동한다 싶은 개화의 절정에서 당신이 다시 말을 걸었다. 보여? 네가 피워낸 꽃이야. 당신은 어느새 잘 말라있는 웅덩이를 가리켰다. 고여 있던 슬픔이 꽃을 이만큼 피워냈다면서, 네가 나를 보고 함부로 웃었다. 꽃은 미풍에 흔들리고 너는 웃었지. 고였던 것이 이제 더 이상 슬픔이 아니게 되었다고, 그렇지 않냐고 하면서. 그 웃는 모습이 예쁘긴커녕 밉고 짜증 나 죽겠는데, 그 앞에서 나도 결국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게 됐다. 네가 설계한 미래 속에 보기 좋게 걸려든 걸 알게 됐는데도 그곳에 있고 싶었다. 기왕이면 너와 붙어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꽃줄기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피운 꽃이라는 듣기 좋은 거짓말을 네 목소리로 들으며 아주 오래, 함께 거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