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사람

by 디어살랑

나는 타고나길 개인주의로 태어났다고 늘 생각했다. 남한테 부탁하는 것도 싫어하고 남이 나한테 부탁하는 것도 싫어하는 전형적인 개인주의. 내 바운더리가 너무나 확실해서 내 시간과 공간을 침범당하면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는 성격이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하고 남편과 자녀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있지도 않은 자녀 때문에 간혹 억울해질 때가 있었다. 아기와 나 사이에서 생기는 끈끈한 유대관계와 나만 오롯이 바라보는 그 지고지순한 사랑과 관심이, 생기기도 전에 부담스러웠다. 이런 내가 임신을 하고 아기를 키우면 행복할까? 에 대한 고민을 수천번은 했다.


1. 우선 애기가 안 귀엽다.

노키즈존가면 마음이 너무 평온하고 애기 보고 귀엽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아기 나오는 예능은 본 적 없다. "네 애는 귀여울 거야~ 예쁠 거야~"라는 소리 많이 들어봤는데, 글쎄 그건 낳아봐야 아는 거니까 미리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2. 해외여행이 취미인데 가기 힘들어질 것 같다.

1년에 한 번 이상 꼭 해외여행을 나가는데, 아기 낳으면 해외에 잘 가기도 힘들뿐더러 해외에 같이 가더라도 모든 게 '애기위주'로 돌아가는 게 아쉽다. 지금은 남편이랑 유럽 가서 하루 종일 걷다가, 밤늦게 바에 가서 와인 한잔 마시고.. 이렇게 할 수 있지만 애기랑 같이 다니면 저런 방식의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제약이 많아지니까.


3. 내 일상이 바뀌는 게 두렵고 무섭다.

내가 주말에 유일하게 하는 게 조용히 독서하다가 낮잠 자고 다시 일어나서 책 읽는 것이다. 그거 외엔 운동가 거나 영화 보기. 근데 아기 낳으면 조용한 독서, 낮잠 다 하기 힘들 듯한데, 내가 좋아하는 일상들을 내려놓을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인가? 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4. 체력이 약하다.

운동 자주 하는데도 그냥 타고나길 체력이 약해서 잔병치레를 많이 한다. 내가 내 몸도 약한데 과연 애기를 케어할 수 있을까? 4kg 되는 강아지도 5분만 안고 있으면 팔이 떨어질 것처럼 힘들어서 다음날 근육통이 배길 정도고, 조금만 피곤해도 기절해서 잠을 자는데 하루 종일 육아를 잘할 수 있을까.


그냥 나는 무조건 죽을 때까지 딩크 할 거야, 이런 신념도 아니고 아기를 무조건 2명 이상 낳아야지, 이런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나라는 존재가 자녀를 가지면 행복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상품 리뷰를 보듯이 자녀가 있음으로써 행복한 사람들의 글을 수도 없이 읽어보고, 또 무자식 상팔자라고 딩크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브이로그를 보다 잠들었다. (그만큼 정말 나에겐 중요한 선택이었으니까!)


친구들도 결혼적령기라서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친구들은 이 주제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체감상 중학교 졸업하면 당연히 고등학교 가는 것처럼 때되면 당연히 결혼하고 아기 낳는 게 보편적인 정서인 듯 보였다. 나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기를 낳은 후의 내 삶과 행복에 대해 미리 고민하는 나 자신이 별종처럼 느껴져서 더 힘들었다. 계속 고민하다가 허무하게 내린 결론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에 결론을 내리려고 했다."였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 살아보지 않은 미래의 경험에 대해서 답을 내리려고 하니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거였다.


아무튼 이렇게 회의적이었던 내가 하나의 사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되는데 이 사건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해외여행을 즐겁게 보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 대각선 앞쪽자리에 엄마와 3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앉아 있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이었으니 아이는 연신 불편한지 울다가, 돌아다니다가, 자다가 하기 일쑤였고 나도 소리가 나니 자연스레 가끔씩 쳐다보게 되었다. 처음엔 '에이고.. 어린아이가 있으니 저 엄마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힘들겠네.'라고 가엾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한참 잠을 자다가 깨서 우연히 그들을 바라봤는데, 아이는 지쳐서 본인 자리가 아닌 엄마 무릎 위에서 잠들어있었고 그 아이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아이를 쓰다듬으면서 내려다보는 그 반짝거리는 눈을 보는데 내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부끄러워질 정도였고, 아직도 그날 비행기에서의 따뜻한 온도가 느껴질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 사건 이후, 가보지 않은 길, 내가 모르는 행복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궁금증은 꼬리를 물어 이제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종류의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인생의 새로운 문을 한번 열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남편과 여러 번 상의한 후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했고,

나밖에 몰랐던, 어쩌면 그 결심조차 지극히 나 자신을 위한 임신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