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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Oct 10. 2024

니킥 승무원

영어 이름 있어? 

 나는 내향형 인간이며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서, 여기에 내 본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외국항공사 근무 시절에는 영어이름을 예명처럼 쓰던 다른 한국 승무원들과 다르게 한국이름을 그대로 썼다.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일할 때 가슴에 차는 명찰에 영어권의 예명 이름이 허용되었는데 아마 한국 사람 이름 스펠링이 다소 길거나 발음하기 어려워서였지 않을까 싶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일할 때는 '세영이'를 킴이나 스텔라라고 불렀다. 그냥 성이나 이름 한글자만 가져다 쓰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영어권 이름을 가져다 썼다. 물론 영어권 이름들도 윌리엄을 빌로 줄여부르는 식으로 원래 이름 대신 부르기도 한다. 어쨌거나 나는 내 한국이름이 외국인이 읽거나 발음하기에 쉽다고 생각해서 바꾸지 않았다. 또한 나름 내 정체성이 직업과 맞물려서 두가지의 자아를 갖는 꼼수를 부릴 만큼 나는 약지 못했다. 그럴수만 있었다면 그렇게 했으리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내 이름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은 승객들이 나에 대해 항의하거나 칭찬 레터를 쓸 때 곧바로 회사에 피드백이 온다는 점에서 나는 내 직업적 투명성과 정직함을 의도치 않게 유지할 수 있었다. (진심 그것을 바란것은 아니었다.) 또한 같이 비행한 동료들 역시 나에게 다시 연락을 하거나 기억하기도 쉬웠다. 나는 가명을 쓰지 않았으므로 회사 포털 사이트에 그들이 아는 유일한 내 한국 이름을 치면 연락처와 사진이 곧장 나왔다. 비행지에서 같이 찍은 사진 보내달라고 연락이 오기도 하고 마음에 든다고 데이트 신청을 해오기도 했다. 또 다른 한국인 승무원에게 내 안부를 물으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코리안 안나와 지니들 보다는 오히려 한국인 이름이 기억하기에 쉬워서인지 동료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평판 역시 투명하게 유지 되었다. 웃긴 한국애... 걔랑 비행했었다, 한국 식당에 데려가줬었다. 등등.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마음이 시릴만큼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비단 그것이 첫사랑의 뜨겁고 실수투성이인 부끄러운 날들일지라도 말이다. 내게 비행 시절, 20대는 그런 시간이다. 만약 내가 유니폼을 다시 입는다면 이름을 '니키-'로 하고 싶다. 나의 그 시절이 속칭 '이불킥각'의 연속이었음에 나는 나름 나만의 은어로서 니킥의 줄임말인 Nickie 를 쓰고싶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한다면 그것이 추억할만한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나에게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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