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가 되기전
아이를 갖게 된 계기
와이프와 4여 년간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만남의 과정 속에서 큰 트러블 없이 잘 만나왔기에 결혼생활도 나름 순탄했던 것 같다.
결혼 초기에는 각자의 삶을 유지하며 신혼생활을 즐기고
각자의 집안에 적응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기를 원하는 부부는 아니었다.
우리 둘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고 내 직업이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밖에 쉬지 못하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직업이다 보니 간간히 여행을 간다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금방 시간이 지나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기에 대한 생각보다는 현재를 즐기는 생활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3년 정도가 지나자, 우리에게 2세가 생기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정말 극단적으로 스타일이 다른 편이다.
와이프는 머리가 정말 꼼꼼하고, 매사에 계획적이다. 소소한 것들을 그냥 진행하는 법이 없다.
꼼꼼하게 알아보고 분석한 뒤 결정을 내리고 묵묵하게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나는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는 어느 정도 고민을 하고 나면 결정은 빠르게 하고
결단력과 행동력이 있는 편이다. 오랫동안 고민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행동하고 잘못되었다면 빠르게 수정해서 재도전하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서로의 성격을 잘 믹스한 아기가 생긴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이런 말. 도. 안. 되. 는 생각도 해보면서 와이프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었다.
와이프의 꼼꼼함과 나의 행동력이 합쳐진다면? 뭐 이런 생각들이다.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이고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세를 갖는 다는 것에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만약 우리가 즉흥적으로 아기를 갖게 된다면, 그것은 태어날 아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는 우리 부부 둘다 동의하는 바였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아기가 최소 성인이 될 때까지는 양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부모가 될 각오를 해야겠고
이것은 즉흥적으로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큰 이슈였다.
경제적인 여건과 우리 생활의 습관 속에서 아기라는 존재가 생겼을 경우
어떻게 변화할지, 우리는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논의를 함께 했다.
우리 부부사이의 사랑의 끝은 결국 아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둘이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남들이 다 아기를 갖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리 둘의 성격과 외모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이쁠 것이고,
우리가 부모가 된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렇게 다른 성격의 부부가 논의 끝에
아가를 가지기로 결정을 내렸다. 꽤나 흥미로운 논의였고 둘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엄마와 아빠가 되기 위한 출발선은 같은 곳에 있지 않았다.
너무나도 다행히도 임신은 계획한 대로 성공하였고, 와이프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며 변화하는 신체와 심리적 변화는 와이프를 다소 예민하게 만들었고
나는 무조건 와이프의 말에 따르는 남편이 되었다.
와이프는 뱃속에 아기가 움찔대고 태동을 할 때마다 놀랍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때론 아파하기도 했다.
허리가 아파오고 옆으로밖에 못 눕는 생활을 하면서
왜 남편은 신체적으로 힘듦을 느끼지 않냐며 원망을 하기도 했다.
특히나 아기가 뱃속에서 커감에 따라 와이프는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에 다다르고
그때마다 곤하게 자는 나를 엄청 때리고 싶었다고 나중에 고백했다.
(실제로 한 대 맞았다.)
나 역시 와이프의 고충을 이해했기에 와이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중 몇 번은 실패로.. 흠..
그렇게 아기가 뱃속에서 크면서
와이프는 엄마가 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뱃속 아기의 성장 주차마다 변화하는 것들, 아기가 뱃속에서 어떻게 성장하며, 엄마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매일 검색하며 해당되는 주에 맞춰서 알아보고 준비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와이프가 원하는 것, 해달라는 것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것은 큰 착각이었으며 와이프는 여기에서 매우 섭섭해했었다.
사실 여자는 배가 불러오면서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변화하는데
남자는 그렇지 않다. 하던 일상을 이어나가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에 딱히 힘듦을 느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태아의 성장과 함께 호르몬의 변화가 발생하지만
남자는 내, 외적으로 변화할 이슈가 없다. 단지 아내의 변화에 맞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뿐이고, 그 고통을 쉽게 체감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한다고는 했지만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몸은 녹초가 되어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날들이 많았고
나도 모르게 와이프에게 소홀하게 대했을 수도 있겠다고 반성을 한다.
와이프는 그래도 고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남편에게 최대한 배려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흔히 말하는 갑자기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고 사 오라고 한다거나,
사소한 것으로 짜증을 낸다거나 하는 감정변화 같은 것들을 스스로가 컨트롤하려고 부단히도 애를 쓴 것 같았다.
나 역시 와이프가 요구하는 것들을 최대한 해주려고 노력했지만
뒤돌아보면 뱃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 내가 먼저 알아보고 준비했던 것이 아니라
아내의 요구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와이프의 입장에서는 말은 안 해도 서운한 순간들이 꽤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엄마가 되는 과정과 아빠가 되는 과정은 동시에 시작하는 것 같지만,
사실 시작점이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