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도한번 안해본 것같은 손
내가 잡아본 손 중 가장 부드러웠던 손은
남자의 손이었다. 심지어 어린 나이의 남자도 아니었다. 노인의 손이었다.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아주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초반 삶이 쉽지 않았다.
Howdy y'all?
이렇게 시작되는 인사는 악수와 허그를 꼭 동반해야만 했고
여자-여자끼리의 악수나 허그도 어색한 내가 생판 모르는 남자들과도
악수와 허그를 자연스러운 척하면서 해야 하니 입은 웃고 눈과 마음은 쫄아 붙은.
그런 초반 적응 기간을 보내며 살았다. 쉽지 않았다. 모르는 남자들과의 악수가 싫고 허그는 더더욱 싫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혼자 독야청청 혼자 독불장군 놀이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나.
쭈뼛대며 주변을 어색하게 만드는 일 같은 건 더더구나 하고 싶지가 않았다.
지구에선 지구의 방식, 화성에선 화성의 방식.
악수와 허그는 점차 익숙해지고 점차 별 것도 아닌 일이 되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아무 준비도, 아무 걱정도, 아무 약속도, 아무 회의도, 아무 책임도 없이 가는 교회에서 설교가 끝나고
마지막 기도가 끝나면 건물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교회의 대문(?)을 통해서 주차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교회의 대문 앞에는 언제나 그렇듯 방금 전 설교를 끝내고 마지막 기도를 한 '목사님'이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하면서 서 계셨다.
그 목사님은 60대 중반 백인 남자였다. 남부 액센트가 살짝, 심하지는 않은. 남부 사람이었다.
머리가 띵~ 하고 울리는, 가슴을 쿵~하고 울리는 감동을 주는 설교를 매주 하는 명 설교자라고 말할 수 없지만 비난하거나 꼬투리를 잡을만한 특이점도 없는 평범하고 무난한 설교를 하는 목사님이셨다.
나는 평생에 처음 교회 안에서 느껴보는 이런 편안함이 좋았다. 평온하니 좋았다.
보통의 경우엔 많은 인파(?)를 피해 살짝 열린 옆문으로 쏘옥 빠져나가거나 해서 그 목사님과 단둘이 악수를 할 기회를 만들지 않았었는데 그날은 어쩌다 보니 우리 세 식구가 한 줄로 쪼로록
그 목사님과 차례차례 악수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모기소리 만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오늘 예배 좋았습니다' 라며 동시에 악수를 살짝 스치듯이 하려고 했는데 아니? 이 손은? 뭐지?
주차장에 세워 놓았던 차에 타자마자 우리는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 목사님 손 엄청 보드랍지 않아?
고생을 모르는 손. 딱 그런 손. 아직도 내 손바닥이 기억하는 최고로 보드라운 손.
세수하고 밥 먹고 펜을 잡을 때만 사용해본 것 같은 손. 아... 아냐. 누군가 밥도 떠 먹여줬을 것만 같은 그런 손. 남편은 '삽질도 한번 안 해 본 것 같은 손. 삽질은커녕 삽 자체를 손에 잡아 본 적 없는 손'이라고 말했고 (아... 군대 이야기일랑은 넣어둬)
아들 녀석은 '아기처럼 보들보들한 손'이라고 말했다.
그날 하루 그 목사님의 부드러운 손을 주제로 하하호호 재미있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린 전혀 모른다.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혹시 누가 아나, 월남전, 걸프전 용맹한 참전 용사였을 런지. 아니면 캔자스 외딴 시골집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옥수수 농사를 돕던 어린 시절을 갖고 있을지.
부드러운 손 하나만 가지고 그분이 어떤 사람일지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아주 좋은 핸드크림을 사용하고 있었을지도)
이후로도 나눴던 많은 사람들과의 악수 - 아이, 젊은이,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아가씨, 등등 연령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많은 악수를 해봤지만 아직도 그날 그 목사님의 손바닥처럼 부드러운 손바닥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가장 부드러웠던 백인 할아버지 목사님의 손
어떤 사연과 역사가 스며들어 있던 걸까.
궁금해도 이젠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더욱 아쉽고 더욱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