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부터 어른까지, 우린 약하므로
어린아이를 안아주는 일
명절 때마다 도망 다니기 바쁘지만 도망에 실패하고 친척들과 마주칠 때도 있다. 어른들이 싫은 거지 사촌동생들에게는 악감정이 없다. 어린 사촌동생들 중 몇 명은 막 태어났을 때부터 봤다. 당시에는 나도 어렸고, 어린 내 눈에 아기였던 사촌동생들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형이 나를 자주 안아줬었어."
사촌동생 중 가장 어린 동생도 이젠 스무 살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내가 과거에 자신을 많이 안아줬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애교가 많아서 그런지 어른이 된 지금도 나를 보면 안아달라고 한다. 제사 때 친척이 모이면 어른들과 아이들의 밥상이 분리되어 있었다. 나는 주로 어린 사촌동생들을 안은 채 밥을 챙겨 먹였다. 아마 매일 챙기는 게 아니라, 그때만 잠깐 챙길 수 있으므로 챙겼을 거다. 나도 어릴 적에는 누군가 챙겨주기를 바랐기에, 어린 사촌동생이 품은 마음도 비슷할 거라고 추측하고 그랬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다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모여있는 사촌동생들이 하나 같이 자신이 어렸을 때 내가 자주 안아줬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이 기억 안 나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는 걸까. 이젠 왕래도 거의 없는데, 사촌동생이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몇몇 장면에 내가 있다는 게 어색하다. 그 기억은 몇 살까지 지속될까.
약하다는 것이 두렵다
사촌동생들은 내가 기억도 못하는 나의 과거를 기억한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내가 상처 준 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7살 먹은 동생을 챙겨주는 동안, 8살 먹은 동생은 자신을 챙겨주지 않아서 섭섭하지 않았을까. 챙김 받고 싶은 마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늘 크니까.
사촌동생들이 성인이 된 이후로 어린아이들을 볼 일이 거의 없다. 최근에는 어린아이들이 무섭다.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아기일 경우 그 공포가 더하다. 혹시라도 내가 안아주다가 떨어뜨리거나 다칠까 봐 불안하다. 물리적으로 늘 지켜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무슨 일이든 생긴다면,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게 될 거다.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인 김기택 시인의 '유리에게'라는 시에는 약하다는 것이 강하다는 것보다 더 두렵다는 구절이 나온다. 사랑에 빠지면 겁이 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약하기 때문이다. 약하기에 두렵다. 어딘가에서 부지런히도 상처를 받을 것을 아니까. 강하다면 걱정하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단단한 사람 따위 존재하지 않다는 걸 안다.
내 마음 편하자고 당신이 강하다고 믿기에는, 당신은 너무 약하다. 아무 강한 척 해도 약한 나의 부모와 친구, 내 모습을 보면서 확신한다. 챙겨주는 사람 없이 밥을 먹기 힘든 아이부터 하루에도 여러 일을 마친 어른까지, 나는 당신이 약하다는 것이 두렵다.
*커버 이미지 : 모리스 드니 '왕관'
유리에게 - 김기택
네가 약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작은 충격에도 쉬이 깨질 것 같아 불안하다
쨍그랑 큰 울음 한번 울고 나면
박살난 네 몸 하나하나는
끝이 날카로운 무기로 변한다
큰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네가 바위라면
유리가 되기 전까지 수만 년
깊은 땅속에서 잠자던 거대한 바위라면
내 마음 얼마나 든든하겠느냐
깨진다 한들 변함없이 바위요
바스러진다 해도 여전히 모래인 것을
그 모래 오랜 세월 썩고 또 썩으면
지층 한 무늬를 그리며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시 바위가 되는 것을
누가 침을 뱉건 말건 심심하다고 차건 말건
아무렇게나 뒹굴어다닐 돌이라도 되었다면
내 마음 얼마나 편하겠느냐
너는 투명하지만 반들반들 빛이 나지만
그건 날카로운 끝을 가리는 보호색일 뿐
언제고 깨질 것 같은 너를 보면
약하다는 것이 강하다는 것보다 더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