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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17. 2021

나의 낭만이 그 사람에게는 아닐 수도

혼자 품어야 할 낭만

A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감정이므로, 본인에게 묻고 본인이 답한다. 아무리 냉정한 척하려고 해도 자신에게 인자한 건 본능이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 보고 싶다.


A는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을 사랑으로 정의하기로 한다. 누군가를 이렇게 가슴 벅찰 만큼 보고 싶었던 게 처음이니까.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가끔 밥을 먹는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처음에는 걷다가 가끔 생각나는 정도였지만, 그 강도는 심해져서 밥을 먹을 때마다, 반찬 하나를 씹을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숨 쉬듯 자연스러워졌다. 


A는 무작정 그 사람을 보러 가기로 결심한다. 따로 연락해본 적도 없지만, 지금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기에 달려간다. 강의실에서 만난 그 사람은 늘 긴 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낸다고 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이 오고 갔을 그 길을 내가 움직이고 느껴보기로 한다. 남들보다 일을 먼저 시작한 A는 야간에라도 수업을 듣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제외하고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건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 


A는 운전을 하면서 과속방지턱만 지나도, 그 사람이 차 안에서 가슴이 덜컹했을 거라는 생각이 마음이 안 좋았다. 그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과 그 사람이 이 길을 오가면서 했을 고생에 안쓰러운 마음이 공존했다. 두 마음 모두 마음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두 시간 넘게 도로 위에 있었지만, 혼자 초조함을 품고 있는 시간보다 그 사람에게 향하는 지금이 더 여유롭게 느껴졌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새벽에 충동적으로 차에 시동을 건 A는 출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그 사람이 사는 도시에 도착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수업자료를 잃어버렸다면서 복사를 부탁한 게 보름 전이고, 그 사람과 밥을 먹은 건 총 두 번이다. 그 사람도 나처럼 수업을 혼자 들었고, 안면을 튼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다. A는 그 사람이 강의가 없는 요일에 일한다는 프랜차이즈 중식집의 상호명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가게 앞에서 그 사람을 기다린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살피면서. 보여줄 미소부터 보이지도 않을 어금니까지 살펴본다.


"지금, 여기에 무슨 일로..."


인사 대신 당황스러움을 먼저 비추는 그 사람을 보며 A는 섭섭함을 느꼈다. 자신이 시시각각 얼마나 큰 그리움을 가지고 사는지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숨을 한번 고르기로 한다. 아침이라면, 당황스러울 수 있을 거다. 


"여기서 일한다고 지난번에 말씀 주셨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왜 여기에 오셨냐고요. 차 몰고 직접 오신 거예요? 지금 이 시간에?"


"보려고 왔죠."


"저를 왜 봐요?"


같이 강의를 듣다가 눈을 마주치거나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잘 웃어주던 사람인데 오늘은 왜 평소 같지 않은 표정인 걸까. 역시 아침이긴 때문일까. 저녁에 왔다면 풀린 표정으로 왔을까. 오늘은 일이 바쁜 날이라 출근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걸까. A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자신을 제외한 경우의 수를.


"그럼 가세요. 저 들어갑니다."


중식집의 문이 닫힌다. 오늘의 점심특선은 잡채밥이다. A는 자신이 찾아온 시간이, 장소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길에 갑자기 나타나면 반겨줬을 텐데. A는 돌아가야 할지, 퇴근 때까지 기다릴지 고민한다. 주방으로 들어간 그 사람은 동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P.S 영화 속에서 상대에게 무작정 달려가는 캐릭터를 보면 낭만적이다는 생각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요즘.



*커버 이미지 : 영화 '인 디 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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