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불안 겪는 부모

자립하는 부모, 자립하는 자녀

by 딥마고

자립自立, 스스로 서다. 이것은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 자녀의 자립이라는 개념은 한창 세대 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이다. 결혼을 한 아들 딸에게 '번호키'를 알려달라며 자유로이 그 집을 드나들기를 원하는 부모의 케이스를 우리는 자주 목도한다. 그만큼 자식의 경제적인 독립은 한국에서만큼은 완전한 자립으로 이어지지 않는데,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보통은 성인이 된 자식이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개인적인 영역에의 침입을 견디지 못해 갈등이 발생한다. 자식이 '그래, 나는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지'라고 인정하고 나면 모든 것이 평온해지는 듯 보이지만, 며느리나 사위가 되는 사람과의 다자 관계에서는 어김없이 문제를 일으킨다. 만일 며느리나 사위의 수용으로 모두와 평온한 관계가 유지된다? 그건 더 문제다. 부모에게서 자립하지 않은 중년이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에게 끼칠 악영향을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자식의 사적 영역에 '침입'하기를 원하는 부모는 일단 자기 자신이 자립하지 않은 상태다. 대부분은 '부모'라는 직함 외에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지지 않을 때 이런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평생을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만 바쳐 온 어머니들이, 자식의 독립 이후에 '내가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빠는 사회적인 직함을 갖고 - 은퇴했더라도 은퇴 전의 호칭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 사진, 등산, 바둑 등의 외부적인 취미활동도 개발한 상태이기 때문에 공허감이 적지만, 엄마의 경우는 자식이 본인의 본업이자 취미였기 때문에 자식에게서 정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쪽은 아빠보다는 엄마인 경우가 많다. 어김없이 해는 뜨고 하루는 주어지고 시간은 있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엄청난 형벌이다. 가장 끔찍한 지옥은 4면이 흰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텅 빈 방, 즉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방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 형벌을 받는 고통은 자식에게의 지나친 간섭 또는 의존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자식에게 전이된다.


아들과 며느리의 사적 영역에 당당하게 침범한 시어머니. 어느 나라 사람이 보면 정말 경악할 만한 상황일 수 있다. 나는 이 이미지를 찾을 때 '사랑과 전쟁'을 검색했다.


당장 나만 해도 꽤 자주 양가적인 감정으로 고통 받아야 한다. 결혼도 했고 아기도 낳은 내가 엄마와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고 싶다는 도덕적 의무감 혹은 감성의 발동. 사실 '독립적 인격체'와 '자식의 도리'는 충분히 양립가능한데, 엄마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엄마는 내가 사회적으로 번듯해보이는 직장에 들어가고 나자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마침내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 했다. 때때로 내뱉는 '네가 알아서 해, 너 좋을대로 해'라는 말이 이를 입증하는 듯도 싶었다. 마음을 놓고 엄마 앞에서 자아를 마음껏 뽐낼라치면, 어느 새 나를 만나러 오는 일정을 나에게 미리 고지하지 않는 엄마의 행동에 다시 침범 당한 기분이 들곤 한다. '딸네 집에 오는데 남한테 할 때처럼 약속 같은 거 잡고 싶지 않다'는 말은, 아직 너와 나는 분리되지 않았다고 강요하는 엄마의 분리불안에서 나온다. 그럴 때면, 내가 꼭 스스로 탯줄을 자르려는 아기가 된 기분이다.


부모에게서 자립하지 못한 사람이 부모가 됐을 때 그 자녀가 힘들어진다는 생각은,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대하는 태도를 알고 난 뒤 더 확고해졌다. 엄마는 예순이 넘었고 외할아버지는 아흔이 넘으셨는데, 아직까지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혼내신다'. 흔히들 통용되는 '네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 아빠 눈에는 어린 애 같아'라는 말이 몸소 현실로 나타나주신 케이스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에게서 너무 자주 '혼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자립할 수 있겠는가. 사회는 부모의 대체물로 보이는 - 즉 나를 당장이라도 혼낼 수 있을 것 같은 - 상사, 윗사람, 장애물들로 가득한데 말이다. 하물며 평생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시달리고도 이것을 온전한 사회적인 역할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어떨까. 우리 윗 세대 엄마들 중에 자립하지 못해 자식과 갈등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이 때문이다. 자식을 자아의 확장으로 인식하는 부모가 거꾸로 분리불안을 겪는 것이다. '우리 만날 때 미리 연락해요'라는 말을 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게, 꼭 자기 수족 쳐내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서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서야 한다. 자아가 건강하게 서 있는 부모가 자식에게 건강한 사랑과 애정을 주게 돼 있다. 그래야 부모 자식 간에도 건강한 관계가 선다. 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모성애에 관한 지난 글​에도 썼지만, 모성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부모 자식간의 관계도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나친 기대와 의존은 불균형을 만든다.



그래서는 아니지만(아니, 그래서일지도?) 나의 딸 평화 - 평화는 태명이다 - 의 이름에는 '설 립立'자가 들어간다. 생각할수록 잘 지은 이름이다. 나는 딸이 스무 살 정도가 되었을 때 경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자립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9살 때, 14살 때, 17살 때 스스로 서 있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의 세계가 나의 세계와는 별도로 꽃 피기를 바라고, 가만히 지켜볼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나 스스로도 자립해 있는 상태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영향을 주는 일이다.


나는 우리 세대가 개인적 정체성이 비교적 확고해서 스스로 선 사람들이 많고, 따라서 점차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내가 틀릴지도 모르겠다. 오늘 광고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기저귀 브랜드를 담당하면서 주요 타겟층인 요즘 젊은 엄마들을 공부한 얘기를 해주었는데, 한 마디로 '자녀를 자아의 확장 개념으로 간주하는 게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거였다. 요즘 엄마들은 대부분이 '배운' 사람들에다 개인별 경쟁심과 성취욕을 학습하고 자라났기 때문에 아이를 일종의 성과물로 취급한다는 것. 아이의 성적이 내 인생의 성적이고 아이가 어딘가 뒤처지는 것 같으면 자기가 잘못 살아서 그런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엄마들에겐 아이가 종교인거야.' 그녀는 정색을 했다. 우리 윗 세대는 육아를 온 마을이 함께 하는 공동의 책무라고 생각하기나 했지, 이젠 파편화된 핵가족 구성원들은 모두를 경쟁상대로만 본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이것이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라면, 개인주의와 가족주의의 기묘한 결합이 이렇게 징그러운 비극을 낳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집단주의적 전통에 서구식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인위적으로 이식되면서 말하자면 '가족개별주의'를 낳은 것이 아닌가. 개개인은 파편화되기만 하고, 가족간에는 서로를 개인으로 존중해주지 않는 기형적 현상. 개인주의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마치 이기주의의 비슷한 말처럼 쌀쌀맞고 차가운 서구의 병폐처럼 쓰이고 있는데, 실은 사회 속의 나보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를 우선시한다는 신념을 가리키는 단어일 뿐이다. 개인주의는 나만큼 타인도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발전적 징후로서 직장 상사나 동료가 결혼 여부나 자식 계획 같은 아주 사적인 영역의 질문을 하면서 함부로 불쑥 침범하는 것에 불평을 토로하는 젊은 세대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하긴, 소위 '진보 진영'에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가지고 찬성한다느니 반대한다느니 말이 많은 것을 보면 아직 '개인 존중'과 한국은 서로 먼 이야기 같다. 그나마 그 토픽이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변화의 증거임에 희망을 건다. 조용히 실천하고, 스스로 바꾸는 수밖에 더 있나.


덧. 그래서 더 많은 여성이 주체성을 갖고 사회에서 역할을 하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워킹맘'이 전업주부보다 더 대단하다, 혹은 대단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원하지 않았는데 전업주부가 된 사람은 점점 더 없어지기를 바라고, 자발적인 전업주부도 부모나 아내 이외의 '자기'를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은 서대문마포은평 북클럽 '다독다독' 모임 후 얻은 인사이트를 글로 풀어낸 것입니다.

thanks to mintyfish, phantasist, kimegn, theghostworld, _itti

& soono, peace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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