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의 비생산성에 집착하는 나자신에게

'저스트 두잇'의 시대를 여행하는 자기착취자들을 위한 독서안내서

by 딥마고

고요하지만 제법 드라마틱하게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았다. 그 사이 평화의 옹알이는 점점 다양해져 떼떼떼와 맘맘마는 기본이고 아주 정확한 '아-빠'와 긍정의 대답 '넨네'까지 '구사가능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여기에 몸짓언어까지 더해져 집게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거나 우리의 집게손가락과 마주대는 '천지창조' 내지는 'E.T.', 거부의 의미로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그게 아니야', 손에 쥔 이유식 숟가락이나 과자를 우리 입에 넣어 먹여주는 '기브앤테이크' 등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이 외에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가 하면, '넣어주세요'라고 말하며 목표물을 툭툭 쳐 가리키면 손에 쥔 무언가를 그 곳에 넣어주고, '주세요'라고 말하며 손을 벌리면 자기가 가진 것을 우리 손에 놓아준다. 이렇게 우리와 소통하기 시작한 평화가 10개월 아기가 되기까지,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다.


평화의 천지가 창조되고 있다. The Genesis.


이런 아기의 '기능'들은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고 스스로 터득한 것이지만, 거저 주어졌느냐면 당연히 그건 아니다. 평화와 우리 부부는 한 배에 타고 크고 작은 풍랑에 몸을 맡기고 있다. 그 사이 나는 모유가 끊겼고, 출산 후 (여러 의미에서 어마어마한) 첫 생리를 했으며, 평화의 생후 첫 고열을 온 가족이 함께 지났다. 해열제 시럽 거부에서 이어진 숟가락 거부, 즉 이유식 거부라는 작은 산도 넘었다.


올 겨울 내 앞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산이라면, 동네 단위를 벗어난 산책을 하기 위해 새로 산 차다. 나는 초보운전의 간 떨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에 스스로를 밀어넣기도 했다. 모든 훈련은 실제 결과가 어떻든간에 스스로 어찌 됐든 '나는 신기능을 장착하게 되었다 혹은 신기능을 장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는 긍정적 기운의 에너지를 준다. 차를 받은 것이 10월 말, 아직 초보운전 스티커는 떼지 않았지만, 서울과 세종시를 누구의 도움 없이 아무렇지 않게 완주하는 수준까지는 이르렀다. 언젠가는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생각이 있기도 했지만, 내 혹독한 운전연습의 가장 큰 목적은 평화와 단 둘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육아휴직 기간을 더 온전히 만끽하고 싶다는 데 있었다. 평화에게 내 시간을 이렇게 오롯이 투자하는 기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둘만의 시간을 더 다채롭고 쾌적하게 꾸리고 싶었다. 마트, 백화점, 쇼핑몰을 빼면 돌이 안 된 아기와 갈 만한 곳은 아주 제한적이다. 그렇게 우리는 종로와 홍대 일대를 전전하는 사이 좋은 전시메이트가 되었다.


아이가 빠르게 성장하는 사이 나 역시 함께 성장했다. 모유가 끊기던 날, 아기와 나를 연결해주던 끈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감상적인 생각에 빠져 - 혹은 호르몬 때문이었나 - 혼자 눈물을 훔쳤던 것이야 꽤 오래 기억에 남겠지만 뭐 아무 것도 아니다. 밖에 있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자책이 거대한 우울감으로 변신해 나를 크게 한 방 후려치고 지나간 것이다.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은 합리적인 무드의 나였다면 전혀 떠올리지 않았을 문장이다. 왜냐하면 나는 11월 한 달 사이에 미니 다큐 프로젝트 <타인의 삶> 새소년 편을 릴리즈했고 장편 프로젝트 '20세기 소녀의 한국근현대미시사'의 첫 촬영에 돌입했으며 <다시 읽는 그림책> 사례발표회를 무사히 마치면서도 한 생명체에게 먹고 마실 것, 놀 것, 절대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 등 사실은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여기다 틈틈이 프로불편러로서 아기가 보는 그림책 뒤에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명품백리스트를 갖고 있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돈을 투자하는 엄마'라고 쓰인 '빻은' 광고문구를 고발했고 남편과 시어머니가 헤어스타일 갖고 뭐라고 하지 않느냐는 미용실 원장에게 당당히 한 마디 날렸으며 '마누라 잘못 되면 내 밥은 누가 주나'라고 쓰여 있는 초보운전 스티커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11월 26일 릴리즈한 <타인의 삶> 새소년 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자책은 어김 없이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무한한 선택들 사이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한편, 우주 한 가운데 홀로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종종 '백지 상태'라고 부르는 이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백지 상태를 심화시킨 것이 내가 태어난 이래 공기처럼 도처에 있던 ‘무엇인가 대단한 게 되어야 하고 하루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야 하며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긍정의 과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고 소비한 어떤 것을 유의미한 형태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의 어떠한 상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에’, ‘어디라도 나갈까’, ‘기분이 나아지려나’ 같은 강박적인 생각들이 나를 더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단행하지 못한 채 웹을 전전하거나 부엌에서 식재료를 꺼냈다가 다시 넣고 핸드폰을 들었다 놓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지쳐 잠든다. 해가 뜨기 전에 눈이라도 떠지는 날에는,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나는, 지금 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내가 아니라 반드시 다른 어떤 것이어야 하므로. 극도로 나 자신을 부정하다보면 해가 뜨는데, 나는 해가 뜨는 걸 지켜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아기가 울 때 같이 울었다. 내 딸은 그래도 울다가도 까꿍 한 번에 웃는, 최선을 다 해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 때때로 우울하고 보잘 것 없는 내가 아기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딸이 처음으로 느꼈을 고통을 곁에서 오롯이 지킬 수 있어 기쁘다. 돌봄이라는 것은 사실 최고의 생산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는 나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유령 같은 ‘성과’와 ‘성공’을 강요한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돌봄노동을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내면화된 결과 일정 기간 이상 돌봄노동 이외에 눈에 보이는 결과를 생산해내지 않으면 초조해 하는 나 자신이 보인다. 지난 글에도 썼듯, 나는 수많은 직장인들처럼 육아휴직에서 '쉰다'는 뉘앙스를 강조해서 받아들이고 있었고 이것이 큰 착각이었음을 매일 깨달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못하는 게 없다'는 밑 빠진 칭찬을 마약처럼 복용해가며 더 높은 곳 더 인정 받는 고지를 향해 스스로를 착취했던 이 '알파걸'은 사회에서 없는 것 취급하는 돌봄노동을 시지프스처럼 매일 수행하는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성과중독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순전히 내가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어디에서 느끼고 있는가? 이런 것도 즐길 줄 알고 이런 것도 소비할 줄 안다고 모두에게 알리면서 서로의 가치를 보듬는 '투명 사회'를 지혜롭게 살아내기 위해서 몰두해야 할 것은 '순수한 흥미'였다. 가끔 평화에게서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본다. 세상의 모든 것이 평화에게는 신비한 장난감이고, 그 생김새와 질감과 냄새를 요리조리 뜯어보는 평화의 얼굴에서 어릴 때의 나를 만난다. 긴장이 쭉 풀려 오리처럼 튀어나온 입, 살짝 벌어진 입술, 그 사이로 흐르는 가느다랗고 맑은 침가닥.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flow'라고 부르는 이 정신적 상태를 나는 자주 그리워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촬영/편집을 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를 비롯한 온 사회가 자주 잊고 마는 것은, 나에게는 몰입할 만한 대상은 충분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아기가 깨는 8시에 출근해서, 남편이 퇴근해서 아기를 맡아주는 저녁 7시에 일을 마치는 Full-time Worker다.


이 고통의 한 가운데를 지나 바닥을 치고 다시 수면 바깥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건 북클럽 다독다독을 통해 읽은 책과, 책에 관한 생각들을 사람들과 나누면서 얻은 어떤 성찰이었다. 나에게 이런 고통을 야기시킨 근원이 나 자신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로 사회'의 무한한 긍정성에 있다는 한병철의 주장이 과도하게 감상적인 상태를 비교적 안온한 중립 상태로 되돌려주는 데 한 몫 했다. 평행우주를 상상해보았다. 나에게 평화가 없었다면,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매일의 노동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그렇게 생산적이기만 했었는가? 가만, 생산적이든 그렇지 않든 내가 신경이나 썼었는가? '생산성'에 관한 집착은 나의 비뚤어진 컴플렉스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닌가? 나의 커리어가 나를 성장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육아는, 개인 프로젝트는, 사회활동은, 나를 성장시키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가만, 성장하지 않으면 어떤가?



Just Do It. Nothing is Impossible. Yes We can.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외치는 사회는 반대로 '무엇인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폭력적 메시지를 은연 중에 던진다. 구성원들은 긍정성과 진취성을 주입받으며 그렇지 않은(내성적인, 욕심이 많지 않은)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성과주의와 공존하는 웰빙, 힐링, 명상적 가치의 강조는 행복마저 우리가 성취해야 할 가치로 둔갑시킨다. 다독다독 멤버의 표현대로, 우리는 성공하면서도 행복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이 성과주의의 끝판왕인 셈이다.


이 끝판왕은, 한국에서 북유럽이라는 키워드로 상륙했다.


서대문마포은평 북클럽 다독다독 멤버들은 풍성한 삶을 위한 순수한 독서라는 목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함께 읽고 만나 이야기한다. 이 모임은 그 자체로 '생산적'이다.


우리도 북유럽에 관한 책을 읽었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 전에 선정해 읽은 아누 파르타넨의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로부터 나는 'Be Awake'라는 키워드를 얻었다. 이 책은 핀란드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미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미국인으로 귀화하는 과정에서 겪은 문화충격이 생생하게 담겨 있고, 조금 불공평하게 말하자면 '북유럽 자랑'을 골자로 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사랑을 좇아 미국 시민으로 새 출발 했더니, 방금 떠나온 나라가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잘나가는 언론사 기자였던 저자 아누 파르타넨. 미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모든 걸 정리하고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결혼식을 올리고 희망찬 미국 생활을 시작해보려는데, 갓 발행된 ‘뉴스 위크’표지는 만국기가 소용돌이치고 한가운데에 뜨악한 헤드라인이 박혀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는…’ 그건 바로 방금 저자가 떠나온 나라, 핀란드였다. 핀란드는 PISA 평가에서 연속해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교육 기적’의 나라로 각광받았고, 아울러 ‘국가 경쟁력 1위’ ‘국가 투명성 1위’ ‘국가 행복지수 1위’ 등 눈부신 성취를 보였다. 급기야 2012년 당시 영국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밴드는 이렇게 선언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면 핀란드로 가십시오.” 호기심 많고 할 말도 많은 저널리스트의 극과 극 비교 체험기를 담은 책『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는 세계 롤 모델이 교체되는 시점에 양쪽에서 모두 살아본 저자가 두 지역의 사회 시스템과 속성이 어떻게 다르고 그에 따라 삶의 질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생생하고도 날카롭게 포착한 논픽션 에세이이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8602529

 


한국에 불고 있는 북유럽 트렌드는 육아나 노동 환경 등 복지 부분부터 이케아, 휘게, 노르딕, '북유럽풍'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인테리어 소품이나 아기옷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고, 몇 년 째 지속되고 있다. TV 프로그램에서,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뜨는 기사에서, 모두가 북유럽의 사회 제도와 마인드셋을 참고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한다. 이 책에서는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으로 그 모든 것을 설명한다. 진정한 사랑은, 완전하게 독립된 개인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관계에 의존성이 생기는 순간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며, 국가가 이런 철학을 갖고 모든 개인이 완전히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확실히 특별한 개인보다는 행복한 개인에 방점을 찍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회다. 나는 노력을 들여서라도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면 미국식 개인주의를 따른 우리 나라의 치열한 성과주의도 조금씩 변해갈 거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여겨지기까지에는 북유럽인들의 부정적 사고, 불평불만이 있었다는 단락에서 무릎을 탁 쳤기 때문이다.


핀란드인들은 비관주의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비관주의 ‘때문에’ 훌륭한 사회를 이룬 것이다. 핀란드인들이 어떤 부당함을 알아차릴 때마다 쏟아내는 숱한 분노와 불평은 특히 그런 부당함이 사소하게 여겨지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성가시게만 보일 테다. 그렇기는 해도 이런 부정적 반응 능력이야말로 핀란드의 성공 비결의 하나다. 핀란드 사람들은 사회 환경을 개선할 실질적인 변화를 재빨리 요구한다. P.362

다독다독에서 '헬조선'을 키워드로 삼고 읽은 두 책으로부터,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얻었다.

1. 우리 모두가 특별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2. 행복은 쟁취할 수 있는 종류의 가치가 아니다. 행복은 나에게 오고 가는 순간적인 감정이고 모든 것은 흐른다.

3.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프로불편러가 되자. 우리가 사는 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지난 주에 나는 '균형'을 테마로 한 네 번째 타투와 '깨어 있는'을 뜻하는 다섯 번째 타투, 레터링 'éveillée'를 새겼다. '헬조선'을 키워드로 한 <다독다독>의 다음 책은 위근우의 <프로불편러 일기>다. 그리고 방금 <피로사회>와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의 책 소개 페이지를 링크하기 위해 접속한 Daum 책 베스트셀러 1위에는 <신경끄기의 기술>이라는 자기계발서가 랭크되어 있는데, 3장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3장. 왜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해?
- ‘모두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헛소리
- 스티브 잡스가 될 거라는 망상에 빠진 벤처기업가
- 최고 혹은 최악, 1%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 최악의 하루
- 당신은 유망주도 아니고 실패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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