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에게

사무실의 당신에게, 집에서 애보는 커리어우먼이

by 딥마고

안녕하세요 선배님, 제가 선배님을 알게 된 것은 제가 입사한 직후이니까 우리 서로 알게 된지는 꽤 되었네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동안 우리 회사도 참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나와 선배님은 그 자리를 잘 지켰네요. 누가 들어왔고 누가 나갔는지, 누구에게 좋은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며 누가 잘 나가고 못 나가는지는 나보다 선배님이 더 잘 아시겠지요. 저는 제 일 외에는 관심 없는 일개 피디이고, 당신은 그 모든 일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직책을 맡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나와 선배님은 서로 다른 부서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만날 수밖에 없기는 한 관계에요. 내가 입사하자마자 선배님은 신입사원인 나와 내 동기들에게 회사에 관한 이런 저런 것들을 알려주면서 자기를 선배라고 부르라고 했지요. 그리고 모든 동기들을 '너'라고 칭하고 이름을 부르며 정말 후배 대하듯 했어요. 하는 일은 전혀 달라도 사회생활 선배니까. 그 요구에 맞추어 동기 몇몇은 선배님을 선배님이라고 불렀고, 나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습니다. 선배님이 따뜻함이라고 포장하는 그 범부서적 유대감이란 나에게는 불편하기만 한 것이었어요.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 어색해졌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게 또 잘하는 일을 좋아할 수 있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너무나 많은 진짜 '선배님'들이 많고도 많은데, 1년에 기껏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당신을 내가 왜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점점 더 납득이 가지 않았어요. 사실 처음부터도 선배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어요. 왜냐하면 나에게 당신의 첫인상은 '너희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아프니까 청춘'식의 논리를 폈던 것 외에 남아 있는 게 없어서요. 그러니까 열심히 하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사회생활을 해 보면 점점 더 모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제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숨어 있다는 거에요.


아무튼 뜬금없이 왜 이런 편지를 쓰느냐. 그건 지난 주 당신과의 대화가 마음에 잔여물처럼 남아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그러니까 썩어가면서 냄새를 풍기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이런 경우 나는 글쓰기로 그 부분을 세척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었어요. 근데 편지로 쓰지 않으면 너무 조심스럽지 않게 함부로 나불대다가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신중함과 정중함을 갖추고자 당신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형식을 택하게 되었어요. 아마 당신은 이 글을 읽지 않을 겁니다.


나는 육아휴직을 연장하기 위해서 당신을 만나게 되었어요. 엄밀히 말하면 연장이라고 할 수도 없죠. 연장이라는 말은 너무 불공평해보이네요. 난 단지 원래 쓰고자 했던 휴직 1년을 혹시나 하고 6개월만 나누어 냈었다가 역시나 하고 6개월을 보태어 원래 계획을 돌려놓기로 한 거에요. 아기를 낳고 6개월이 지나고 나면 내 마음이 어떨지 나는 예상하지 못했었어요. 아이고, 육아는 나와 맞지 않는구나, 나는 그냥 내 일 해야 숨 쉬는 사람이구나. 회사로 돌아갈래. 이렇게 될지, 눈물을 흘리면서 이 아이 곁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어. 이렇게 될지,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었죠. 지금 나의 상태는 후자에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부분도 있어요. 이 회사가 내가 잘하는 부분에 기회를 많이 준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지만 내가 일을 신명나게 할 때조차 전혀 느낄 수가 없었던 그 감정을, 이 작은 생명체가 나에게 주고 있어요. 그건 하루를 더 충만하게 보내고 싶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감정이에요. 일을 할 때는 이 하루가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아쉬움 같은 건 없었어요. 오히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을 했지요. 그건 인생이 뭣 같다고 말할 때 그 체념의 정서 중심에 있는 문장이에요. 신 나게 일을 하고 큰 그림을 보면 아름다운 발자국이 남아 있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때로 돌아가고 싶거나 그렇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요즘의 저와 남편을 보세요. 예를 들어 우리는 이제 벌써 아기가 태어난지 100일이 된 날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리고 그게 참 아쉬워요. 아기가 다시 작아져서 목도 못 가누던 그 때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에요. 무럭 무럭 자라라, 그렇지만 너무 빨리 크지는 마. 이것이 우리 부부의 마음이에요. 돌아갈 수 없는 수많은 어제들을 회상하면서, 아기가 태어난 후의 1년을 곱씹어 충분히 소화시킨 후 내 몸과 마음 구석 구석, 그 시간들이 나의 일부가 되어 반짝 반짝 빛나게 만들고 싶어요.


다른 의견들은 나에게 닿지 않은 것인지 몰라도 피디 '선배들'의 반응은 '네가 원하는대로.'였어요. 나는 그걸 선배들이 내게 호의를 보이는 거라 해석하지 않아요. 어찌 보면 냉정한 것일 수 있지요. 내가 원하는대로 하고, 그 책임은 내가 지는 것. 그건 이 나라에 사는 모두가 아는 거에요. 하지만 굳이 당신은 그 날 내가 너무 걱정되었는지 이런 말을 했어요.


왜 연장을 하니. 빨리 다시 일을 하자.
후배들이 네 자리를 침범하고 있다.



글쎄요. 이건 아무런 이야기가 아닐 수 있어요. 마지막 문장이 당신의 펀치라인이었겠지요. 그런데 마지막 문장은 사실인지 아닌지 당신도 나도 아무도 며느리도 알 수 없는 일이고, 달리 보면 그만인 일이며, 심지어 나는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상관 없으니까 그냥 잊으면 되는 말이었을 수 있어요. 실제로 지난 몇 일간 나는 당신과의 대화를 잊었었으니까, 별 일이 아닌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찾아오자 마치 숙성된 콩에서 메주 냄새가 나듯, 그 대화의 기억이 다시 나를 찾아왔어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나는 그 말에 의해 전혀 위협을 당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위기감을 주려는 당신의 의도는 파악할 수가 있었기에 기억에 남았나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나에게 위기감을 주려고 했을까요? 당신은 나를 아끼는 후배로 생각했기 때문에 내 커리어를 걱정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의 확률로, 당신의 '판단'이 그 말에 개입했다고 가정해 보았어요. 이를 테면 이런 판단이에요. 일을 쉬면 감이 떨어진다. 결혼한 여자들은 아기를 낳으면 일을 쉰다. 그러므로 결혼한 여자들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결혼한 여자들은 결국 회사에서 도태된다. 그래서 고위직에 유부녀가 없는 것이다. 여자는 뽑으나마나다. 그래서 여자를 뽑을 땐 결혼할 것인지 아기를 낳을 것인지 물어야 한다.


고작 말 한 마디 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비약을 하다니,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당신의 말을 촉진제로 삼아 나 스스로 여성과 커리어에 관한 생각을 확장하게 되었다고 할게요. 그런 의미에서 고맙습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요.


제가 오늘 스웨덴에 관련된 팟캐스트를 들었거든요. 스웨덴 육아에 관한 책을 읽은지는 한 한 달 정도 되었고요. 라떼파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지는 한 여섯 달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기를 낳고 엄마와 아빠가 동등한 휴직의 기회를 얻는다면, 당신과 같은 직책의 사람들이 '후배가 너의 자리를 침범한다' 같은 말을 할까 하고요. 아기는 여자 혼자 낳는 것이 아니기에 엄마와 아빠 모두가 아기와 함께 할 시간을 공평하게 갖고, 아이가 아프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 아기를 회사에 데려오기도 하며, 4시에 퇴근해서 그 이후의 시간에 이메일이나 문자로 업무 관련 연락을 하는 게 금지된 사회라면,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기를 낳으면 엄마와 아빠 모두가 이런 감정을 겪는다는 걸 모든 사회가 모른 척 하지 않고, 소중한 시간을 만끽하면서도 여성과 남성 모두가 커리어와 육아에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면, 누가 아기 낳는 것을 불안해 할까.



당신의 다음 말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나도 애가 둘인데, 애들이 나한테 안 와.
나랑 안 놀려고 해.


저는 짐짓 친한 척을 하며, 그러게 집에 좀 들어가세요. 라고 말을 했지요.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거에요. 지금처럼 회사에, 커리어에,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살아가는 인생을 바꿀 계획도 의지도 없을 거에요. 왜 이렇게 생각하느냐고요? 그 말을 하는 당신이, 별로 슬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쉬워 보이지 않았어요. 더 억울하게 말하자면, 아마 당신은 당신의 아내보다 아이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을 테지요. 더더욱 억울하게 말하자면, 아마 당신은 내 남편보다 영유아 전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출산한지 6개월이 지난 나에게 몸은 좀 어떤지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주말에도 아이들과 지내지 않고 밖에 나갔던(나가는) 자신을 돌아보면 후회가 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지난 번에 나와 통화를 할 때 육아에 찌들어 지친 목소리라고 말을 했어요.


육아는 분명 아주 힘든 일이지요. 하지만 단언컨대 당신이 집에 잘 들어갔더라면, 아내분이 육아에 '찌들어 지치는' 횟수가 크게 줄었을 거에요. 저처럼요.


당신이 나의 남편처럼, 이유식을 야무지게 저어 아이스트레이에 소분해 넣어두었다가 때가 되면 데워 먹였을지요. 되집기는 무어고 뒤집기는 무어며, 손싸개 발싸개 속싸개 겉싸개 유두보호기 산모패드 수유패드 전동바운서 쏘서 범퍼매트를 배우고 아내와 함께 구매하고 사용했을지, 매일 밤 목욕을 해주었을지,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었을지, 동화책을 읽어주었을지, 식초 넣은 물을 끓여 장난감 소독을 해주었을지, 아랫니가 돋아난 날에 손가락으로 그 감촉을 느꼈을지 궁금해요. 당신이, 나의 남편처럼, 뒤집기에 성공한 날을 기억하는지, 아기가 좋아하는 이유식이 양배추가 들어간 미음인지 고구마가 들어간 미음인지 알고 있을지, 아기가 산책 나가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나뭇잎인 걸 알고 있을지, 아내가 집에 없는 날에는 아기를 업고 설거지와 요리를 할지, 무엇보다 하루 하루 다른 아기의 표정과 행동을 더 가까이에서 더 꼼꼼하게 보고 싶어하고, 그래서 나와 동일한 기간의 육아휴직을 갖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요. 부부와 아기와의 나들이가 말 그대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서 마치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을 혹시 느낀 적이 있을지도요.


어떤 대답은 긍정적일 수도, 어떤 대답은 부정적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당신도 내 남편처럼 아기가 태어나던 날 눈물 콧물할 것 없이 정신 없이 울었을 수도 있고, 정신 차려 보면 걸음마를 하고 또 정신 차려 보면 유치원에 간다는 아이에게 짐짓 미안해졌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은 아시죠? 아기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런 말은요? 아기는 딱 받은 만큼 되돌려준다.


아기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한데, 아빠는 필요한 자리에 있을 수 있었나요? 아빠의 역할은 아기에게 필요한 용품을 사기 위한 돈을 벌어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에게 딱 받은 만큼만 되돌려주는 것이라면, 돈을 벌어다줬으니 많이 받았을텐데 왜 당신에게 안기려고 하지 않을까요?


저는 당신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은 피해자에요. 남자니까 집안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고 자식을 사랑해도 표현하지 않는 것이고 그냥 돈이나 많이 벌어다주면 되는 거라고 가르친 건 사회니까. 아기가 태어나도 남자니까 일을 쉬는 건 말이 안 되고 일을 해야 하니까 아기가 자라나는 걸 멀찍이서 지켜보아야 해서 술을 마신 어느 늦은 밤에나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겨우 할 수 있는 게 애정표현이라고 배워왔으니까. 일해서 성공하는 것을 가족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처럼 일하는 여성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라, 커리어를 추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당신의 기준에서는 공평한 것처럼 보였을 수 있어요.


자꾸 스웨덴 이야기만 해서 죄송하지만, 스웨덴 국정홍보처에서 만든 영상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고 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실패해도 됩니다.> 전혀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는 문장이 아니지요. 그래도 스웨덴은 우리 나라보다 잘 살고, 심지어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요. 세계적인 기업도 유수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팟캐스트 진행자들은 실패해도 되니까 오히려 이것저것 시도해도 되고 따라서 나태해지지 않을 수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하고 추측하더라고요. 우리가 흔히 아는 복지=나태주의! 와는 반대되는 이야기지요.


피해자인 당신이 언젠가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육아휴직 서류를 내밀면서,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시간을 잘 누리고 와라. 당신의 행복이 우리 회사의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 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도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고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겠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당연히 당신을 사랑하고 안아줄 것입니다. 아이들은 받은만큼 돌려주거든요. 당신이 이런 삶을 원할지 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원한다는 가정 하에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게 뭔지 말해줄게요.


바로 페미니즘입니다.


관심 없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저는 저의 휴직 1년이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내 직업은 사람에 관한 일이고, 사람은 흔히 누군가의 딸 혹은 아들이며 또 누군가의 엄마 아빠이기 때문이에요. 또 내 커리어와는 별개로, 후배가 잘 되는 것은 나에게도 기쁨입니다. 후배의 커리어가 나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오늘은 부디 일찍 들어가 아이들의 포옹을 받으시기를 빌게요. 또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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