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여름 끝에 죽다 2
2.
집에는 에어컨이 없어 회사 근처의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곤 했어요. 너무 더워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뒤척이다 지쳐 억지로 잠드는 그런 여름밤들이었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지 5년 만에 혼자만의 공간을 얻게 되었다. 착실하게 부은 첫 적금은 그렇게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가끔씩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가 몇 번의 선을 보았다. 그때마다 다시는 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선이란 게, 인연이란 게,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안 될 것이 되는 일도 아닐뿐더러 그곳에 나오는 아가씨들은 하나 같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미 파악하고 나온 서로의 조건들을 확인하고 별 의미 없는 질문을 하면서 미래의 눈금을 가늠해 보는 일 따위였다. 그것이 충족되어야만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나마도 남자에게는 해당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날, 사건이 시작된 그날, 그날은 아침까지도 아무렇지 않던 형광등이 켜지질 않았다. 형광등도 생명이 있어 삶과 죽음을 경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일찍 찾아온 오래된 더위에 지쳤나 보다. 더군다나 자신은 일생동안 빛을 발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쉽게 주눅이 들었던 모양이다. 누구나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몸 안에 장착되어 나오는가 싶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나는 꽤 불편했다. 그것이 그 스치는 찰나의 생각이, 그날 밤 선택이, 감행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그 불편함이. 도대체 자정이 넘은 시간에 문을 연 전파사를 찾겠다는 나의 무모한 생각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동네에 있는 두 곳의 전파사가 당연히 문이 닫혀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지하철 역 앞에 있는 전파사까지 갔었던 것이다. 그곳은 마지막 지하철도 떠난 후여서 그런지 꽤나 어두웠고 너무 더워서 그랬는지 지나는 사람조차 없었다.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출입구로 들어서려는 데 당신이 그 입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뒤돌아 봤지만 다가설 수는 없었다. 어떤 직감에서였을까. 무슨 일에 연루되는 건 정말이지 싫다. 건너편 전파사 앞까지 다가가 문을 흔들어서 닫힌 걸 확인하고는 운동복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그 자리에 여전히 당신이 앉아 있었다. 흘끔 쳐다보고 지나가려는 찰나, 당신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 눈빛이 중간에서 만났다. 기억나나요? 당신은 마치 늑대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동물원에서조차 늑대를 본 일이 없는 내가 그런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수천 마리 중 단 몇 마리뿐이라는 은색 털을 가진 늑대. 도대체 그 순간, 은색 털을 가진 늑대라니 말이다. 동물의 왕국을 너무 많이 본 탓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늑대. 나는 너무 취해있는 당신을 그곳에 두고 올 수가 없었다. 짧은 머리에 앞머리만 길어서 게다가 몸매도 깡말라 얼핏 보면 남자아이 같은 당신을. 그런 당신이 나를 따라 열심히 걸었다. 여자들은 남자가 여자를 생각할 때, 육체적인 혹은 성적인 것만을 원한다고, 남자들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상엔 사랑하는 여자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남자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가던 한 커플이 우릴 연인으로 생각했을까. 친구 사이라고 생각했을 까. 뭐, 아무려면 어때. 누군가 곁에 있을 때 그렇게 설레던 적은 솔직히 이십 칠 년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집은 깜깜했고 더워서 가만히 앉아있어도 등줄기에서는 몇 가닥의 땀이 명주실처럼 여러 갈래로 흘러내렸다. 기억하나요? 내가 당신께 먼저 말을 꺼냈다는 사실을. 도무지 당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데 그런 말을 꺼낸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평소에 사람을 너무 잘 믿는 것도, 그렇다고 전혀 안 믿는 것도 아닌 중립적 삶의 태도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당신을 늑대라고 느꼈던 이유가 방안에 들어와서 명확해졌다. 당신은 옥탑까지 오르는 게 힘들었는지 창문에 매달려 호흡을 정리하고 있었고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이 그런 당신의 모습을 무대 위 배우처럼 비췄고 그때 당신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나는 아니 내 머리는 내 눈은 또렷이 그때를 회상한다. 그 빛을 담고 있는 눈을 보았을 때, 나는 ‘헉’하며 동공을 풀고 숨을 멈췄었다. 당신에게 택시비를 쥐어주고 싶었지만, 지갑엔 몇 천 원뿐이었다. 당신이 이 동네에 산다고도 생각했지만 어쩌면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모르겠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제 스스로 이렇게 적극적이라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을 그냥 그곳에 남겨두고 오기엔 당신이 너무 위험해 보였다. 아니, 당신과의 첫 만남에 그리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술에 취한 여자를 재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혹은 그곳에 술 취한 남자가 있었다면 그래도 집에 가자고 말했을까. 어쩌면 내게 나쁜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더웠기 때문이라고 그날을 너무 더운 여름밤이라고만 해두겠다. 아니, 형광등 때문이라고 정정하겠다. 형광등 때문이라고. 나중에 생각난 것인데 당신은 내가 퇴근 후에 자주 가던 바에서 본 적이 있었던 여자였다. 맞지요? 어쩌면 나와 같은 지하철을 타고 왔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살고 있는 곳이 같은 동네일지도로 모르고, 이곳이 아니라면 당신은 나를 따라 내린 것이라 생각해도 될까요? 아니면 우연일까요? 어쩌면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일지도 모르겠죠. 당신은 내가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부지런히 따라왔다. 마치 그런 역할을 맡은 여배우처럼. 방바닥은 보일러를 틀어놓은 것같이 한낮의 사막처럼 달구어져 있었다. 도저히 온몸을 바닥에 대고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형광등이 고장 난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우린 나란히 누웠다. 실내의 어색한 공기는 나의 숨소리를 점점 거칠게 만들었다. 나는 얼른 일어나 라디오를 틀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숨소리는 변주가 되어 이질적으로 커졌다. 내가 라디오를 틀 때, 당신은 이미 정해진 감독의 디렉션처럼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안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당신서 서서 숨을 고르던 -창문을 내다보았다. 그곳은 감옥보다 더 튼튼한 철망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1년을 넘게 그곳에서 살았지만 철망이 그토록 오밀조밀하게 짜여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을 보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당신의 몸에서 흩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들렸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술에 취한 남자의 욕 소리도 들렸다.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아득하게나마 부부싸움 하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청해보다가 문득 일어나 지갑 속에 있는 카드와 돈을 책꽂이에 꽂혀있던 잡지를 꺼내 그 속에 감췄다. 그렇게 하는 게 안심이 되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당신은 이미 내 카드를 가지고 있다. 카드회사에 거래중지 요청을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고, 다음 달 결제대금이 300만 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당신은 젖은 머리카락만 수건으로 감싸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알몸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이미 내 눈은 앙증맞은 당신의 젖가슴과 일별 했고 내 머릿속은 당신의 알몸을 기억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당신의 숨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그리고 당신은 천천히 내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