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여름 끝에 죽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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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 곳으로 가면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요. 당신의 아니, 당신들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질 수 있을까.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곳에 앉아서 기차를 기다려야 할까. 기차는 곧 도착할 것이다. 사람들이 조금씩 분주해지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나는 개찰구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의자에 앉아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공중에 떠있는 문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한여름인데도 역사 안은 한겨울처럼 냉기로 가득하다.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가 사람들을 싣고 떠나고 있다.
눅눅하고 지저분한 옷들을 겹겹이 입고, 늙은 나무처럼 졸고 있는 노인이 옆에 앉아 있다. 마치 그 자리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망설임도 없이 눈을 꼭 감고서 말이다. 품에는 누가 집어 가지도 않을, 평생을 지고 다녔을 것 같은 낡은 배낭을 꼭 껴안고 있다. 천천히 썩어가는 생의 냄새가 노인의 몸에서 풍겨 나온다. 그도 언젠가는 다른 시간을 살았을 것이다. 행복하진 않았지만 아니, 어쩌면 행복했을 그리고 가족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의 곁을 피해서 오고 간다.
늙은 나무는 두터운 껍질을 벗겨내지 못하고 천천히 썩어가는 중이다. 나무는 껍질이라도 있어 썩어가지만 나는 썩어갈 그 무엇조차 가지고 있질 않다. 그는 말라비틀어진 뿌리라도 있지만 나는 그것조차 잘려버린 나무다. 많은 사람들은 때가 되면 저 문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저 문은 그들이 뿌리내리고 싶어 하는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이다. 나는 매표소 앞으로 다가가 직원이 보이는 작은 창에 얼굴을 들이민다. 직원은 아무 말도 없이 쳐다보지도 않고 내게 묻는다. 아니 혼잣말을 한다.
“가장 먼 곳으로 가시는 거 맞죠? (실제로 그렇게 물어보는지? 너무 관념적이고 작위적인 것 같아서)
왕복이시죠?”
“......”
직원의 말은 아무 감정 없는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이다. 그는 더 이상 아는 체를 하거나 걱정을 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나는 말없이 직원에게 신용카드를 내밀었고 직원은 내가 내민 카드를 받아 익숙한 모습으로 기계에 읽히고 눈으로 패드를 가리켰다. 나도 반사적으로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패드에 사인을 하고 표를 받는다.
1.
당신을 알고 난 후 내 마음속엔 벽이 하나 생겨났다. 그 벽들의 이쪽에서 저쪽까지는 날카로운 눈금으로 무엇도 채울 수 없을 만큼 촘촘히 그어져 있다. 마음에도 벽이 있다니. 제 마음에 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몇이나 될까. 마음속의 벽을 더듬을 수 있다니. 한때는 당신이 그곳에 가득했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준입니까? 아니면 향입니까? 나는 정말 알 수가 없다.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다. 당신을 떠올리면 내 머릿속에서는 자동적으로 입력된 두 사람의 이름이 하나로 짝을 이뤄 튀어나온다. 이 세상에 이름만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콧등이 아려옵니다. 얼굴을 쳐들고 눈을 감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미간 밑의 콧등을 세게 누른다.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나는 거의 매일- 버스 속에서, 올려다본 파란 하늘에서, 한 밤중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한강의 오렌지 가로등불빛에서, 횡단보도를 홀로 건너는 고양이를 발견하면서 그리고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 때조차도 -눈물을 흘렸다. 그 어떤 거울이라도 거울 앞에 서면 제 눈은 투명해지는 거죠.
사람들의 눈물을 모아 여름에 내리는 비의 색깔로 만든 게 소주가 아닐까 한다. 작은 병에 담아 파는 그 맑은 물 말이다. 소주를 마시며 그런 생각을 한다. 자신이 마신 소주만큼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눈물이 뜨겁다는 것을 당신은 아나요? 너무나 뜨거워 볼 살이 타들어 가는 걸. 당신이란 단어는 또다시 내게 혼란을 가져온다. 당신에 대한 기억의 대가는 리튬이다. 이미 내 신경과 육체는 의지로부터 격리되어 작은 알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편지는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읽힐 수도 있고, 서울의 어느 곳에 버려져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혼자서 썩어갈지도 모른다. 추억은 두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엔 세 사람의 몫일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그것이 일방적일 때 추억은 상처조차 되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 해도 이제는 전혀 부끄럽지가 않다. 편지의 시작은 그냥 평범하게 시작된다. 당신들에게…
처음 당신을 만난 날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이미 이것 역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능해진 일 중 하나이다. 극장은 관객이 몇 명이 들어오든 상관없이 약속된 시간에 필름이 돌아갈 뿐이다. 내 마음은 텅 빈 극장과 같다. 당신을 잊기 위해 당신이 떠난 그날부터 나는 골목 코너에 있는 약국에서 박카스를 산다. 이것은 아이러니다. 하루도 안 거르고 집에 올 때마다 당신은 골목 모퉁이에 있는 약국에 들러 박카스를 샀다. 나는 당신이 하던 그 짓을 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지 대체 내게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보다도 당신이라는 말은 도대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정확하면 좋겠다. 향인지. 준인지. 그것도 아니면 당신들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나는 준을 사랑했다. 아, 아니, 아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향을 사랑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준에게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모르겠다. 입술이 떨려온다. 삼복더위 속인데 왜 이렇게 춥기만 한 건지…
내 몸을 쓸어주던 당신의 손길이 그립다. 혼자서 7년을 살았던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작은 손길 하나에도 쉽게 감동받는 모양이다. 나는 연애란 걸 태어나서 단 한 번 해본 적이 있다. 그 여자는 착한 여자였다. 나와 만나던 몇 개월 동안 단 한 번도 화를 내본 적이 없는 정말 착한 여자였다. 내가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사소한 실수라고 생각하기엔 컸던 몇 가지의 잘못에 대해서도 그녀는 언제 나처럼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다. 늘 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어주었다. 백육십도 안 되는 작은 키에 조금은 통통한 몸매, 누구도 바라봐 줄 것 같지 않는 외모를 가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내게, 운명에 쉽게 순종했을까 -그녀를 만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다른 여자를 찾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녀는 순순히 내가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었다. 어쩌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아주 조심스럽게 말하곤 하였다. 그것은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다. 그저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거나, 늦은 밤 집 앞까지 바래다주는 것 같은 소소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살아왔던 시간들 속에서 작은 배려조차도 받아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여자에게 착하다는 형용사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그녀도 현실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만은 정말 착한 여자였음이 분명하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하다. 왜 그 여자 이야기를 이 편지에 적고 있는지. 미안하군요. 약기운 때문에 신경이 느슨해지는 걸 느낀다. 알약 몇 알에 내 몸과 신경은 모두 제어당하고 있다. 너무 늦었다는 것을 내 몸도 알고 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큰 상처를 한두 번쯤 겪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까지 가정으로라도 생각을 해야만 하는 내가 정말 우습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상처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나다. 나의 일상이란 너무나 따분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니 말이다. 학교에선 언제나 중간쯤에 앉았고, 성적도 그렇게 잘하거나 못하지도 않았으며, 모든 공납금은 마감일 훨씬 이전에 영수증을 받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그런 삶. 정말이지 지루해서 역겹다. 지극히 평범한 그리 부자는 아니지만, 부족한 것 없었던 유년이었다. 그렇다고, 가족 중 누군가가 특별한 병을 앓았다거나, 감옥에 갔다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척도 하나 없었다. 모두들, 너무나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삶에 있어 크게 욕심내지 않는 소원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재미로 살아가는 동기간들. 그런 가정에서 자란 나는 어떤 집단에서도 적응을 잘했다. 아니, 그렇게 진지한 인간관계 자체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면 의례히 있어야 하는 친구 몇 조차도 없었던 나에게 정말이지 쇼킹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셨고, 아버지도 많은 고민 끝에 어머니의 독립을 받아들이셨다. 독립이란 이름은 다름 아닌 이혼이었다. 두 분은 내가 정신적으로 독립(다른 단어로 바꿀 것: 심사위원은 속독하기 때문에 엄마가 독립한 건지 내가 독립한 건지 혼동을 야기시킬 수 있는 단어는 피해야 함)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리신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있어 이혼이란 호적을 나누고 부부관계에서 친구관계로 치환되는 단순한 것이었다. 45평짜리 아파트에서 아버지는 24평으로, 어머니는 18평으로 같은 단지 내에서 분리된 거처 말고는 바뀐 것도 없었다. 그분들은 그렇게라도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가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내게 일어난 유일한 일대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조차도 별생각 없이 지나갔다. 크게 기뻐하거나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 삶. 나는 감정에 둔하다. 아니, 감정이란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는 모양이다. 두 분의 노년의 선택 특히, 어머니의 선택에 위로가 되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한 아들이라는 점에서 누누이 미안함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 위인이 되지 못했다. 그게 바로 나의 삶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