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여름 끝에 죽다 3
3.
개찰구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네요. 숲에 들어가 보면 단 한그루의 나무도 생김새가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나무들처럼 사람들은 숲을 이루며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그 문과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들에게 문은 무엇일까.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늦여름 해가 질 무렵, 나와 같은 이유로 기차를 타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아니, 이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잎을 잃은 가지들은 아주 작은 바람에도 시려할 테니까. 밑 둥부터 천천히 썩어 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가지들은 쉽게 부러진다. 살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당신은 피가 아름답다고 느껴본 적이 있나요? 여자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 까요? 젖은 생리대를 바꾸기 위해 변기에 앉았을 때, 투명한 물속으로 흩어지는 붉은 피를 만난 적 말이에요. 그 묘한 아름다움을 나는 곧잘 상상해 본다. 본 적은 없지만 만년필촉을 교체하려고 물에 담가두면 둥근 원을 그리면서 파랑 띠가 물속에 생긴다. 퍼지면서 원을 그리지만 밖으로 일탈하지 않는다. 빨간 피가 그렇게 퍼지면 참으로 쓸쓸할 것만 같다. 공포 영화나 감독들에게 피는 특별한 존재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처럼 유치한 색채로 만들어버리거나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중독증에 걸려 마치 피의 색채가 무의미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처럼. 피는 폭력입니다. 사랑과 폭력은 비슷하다. 내가 눈물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내가 흘린 눈물은 아니, 세상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작은 초록색 병에 담겨 동네 어느 곳에서든 천 원짜리 한 장이면 쉽게 살 수 있다. 리튬을 먹고 소주를 마셔서인지 제 스스로 마음속 밑바닥을 미친 듯이 긁고 있었다.
마음속 벽이 느껴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더듬거리며 그 벽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피가 바닥에 고이는 모습을 보고 싶어,라는 생각에 미치자, 소주병은 이미 내 손을 떠나 벽에서 튕겨 나오고 있었다. 바닥으로 유리조각을 산산이 뿌려놓았다. 제일 먼저 바닥으로 떨어진 병목을 잡고 있는 힘껏 손목으로 찔러 넣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내 몸은 이미 모든 걸 포기하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다만 얼얼했을 뿐이다. 눈물처럼 뜨거운 피는 바닥으로 흘러내렸고 식어갔다.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라디오헤드였다. 노래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볼륨을 조금 올렸다. 탐 요크의 목소리는 자꾸 사라져만 갔다. 방바닥이 점점 큰 붉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색이었다. 나는 꽃처럼 그곳에 스며들고 싶었다. 그때조차 당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헛된 바람이었다. 미련할 만큼 헛된 바람. 이미 난 내가 아니었다. 어느 생명이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자리에 누워 피가 내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천천히 스며드는 감촉을 느꼈다. 따뜻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당신이 적어주었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열한 자리를 다 누르고 나서야 그 번호가 쓰이지 않는 번호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토록 미련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어. 돌아와 줘.’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향이든 준이든. 한 사람만이라도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다. 이 세상엔 누구에게나 가끔씩 자신의 전부인 것이 찾아온다. 당신이 내게 처음으로 몸을 허락했을 때, 이미 당신은 나의 전부가 되었다. 그렇게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기가 두려워지고 있었다. 나는 사력을 다해 리모컨을 찾아들고 오디오의 볼륨을 전부 올렸다. 그제야 탐 요크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그때, 옆집인지 아랫집인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여자의 목소리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도 따라왔다. ‘누구야?’ ‘이렇게 음악을 크게 틀면 어떡하자는 거야?’
아주 작게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내 방으로 검정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 사람은 붉은 피에 젖어 누워있는 나보다 오디오의 전원을 신경질적으로 먼저 꺼버렸다. 피의 색깔이 무지개 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의 의식이 끊겼다.
당신은 부재중이다. 돌아올 거라고. 아니, 그 바에 가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꼭 그만큼의 확신이 있었지만 당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당신이 사라지고 난 일주일 후였다. 꼭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자 당신을 다른 것들로 희석시켜야 했다. 당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을 객관화시켰지만, 당신과 보낸 시간들을 객관화시키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 어떤 논리적 설명으로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신을, 몸을 파는 여자나 섹스를 쉽게 생각하는 여자로는 표현하기는 싫었다. 나랑 자서가 아니었다. 당신은 내 시나리오에서 마리아로 등장한다. 그것이 당신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쉽지는 않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열흘만이었다. 당신의 얼굴도 희미해질 때쯤, 지독한 한여름 밤의 꿈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시제의 일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것- 시제가 현재-과거-과거완료로 분산되어 있어 산만할 수 있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