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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Jul 04. 2018

촛불체제의 마지막 퍼즐,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북액톡]'천관율의줌아웃'을 읽고

대통령 선거도, 지방자치단체선거도 모두 더불어민주당 압승, 자유한국당 참패로 마무리됐다. 지엄한 촛불의 심판이었다. 2016년말 타오른 촛불은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해도해도 너무한 비정상에 분노한 이들이 촛불을 들어 해도해도 너무한 비정상을 그나마 정상으로 돌려놨다. 


"이게 나라냐?"는 슬로건 아래 열에 여덟 아홉은 하나가 됐다. 앞으로도 촛불은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해도해도 너무한 비정상은  어느정도 사라진 지금, 열에 아홉이 촛불을 들고 "이게 나라냐?"고 외쳐야할 필요성은 크게 줄었다. 

지금은 "이게 나라냐?"가 아니라 '대한민국은 이런이런 나라여야 한다'는 디테일이 중요해진 타이밍이다.


이게 나라냐와 달리 대한민국은 이런이런 나라여야 한다에 대한 디테일은 대단히 예민한 이슈다. 열아 아홉을 하나로 만든 촛불을 분열시킬 수 있는 씨앗을 품고 있다.


촛불의 분열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 이슈를 놓고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최저 임금제, 주52시간 근무 등 다양한 경제 이슈를 놓고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대립하는 장면이 이미 여기저기서 연출되고 있다.좁혀서 보면 사민주의 대 자유시장주의자간 대결 구도다.



시사인 천관율 기자는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 시사인에 썼던 정치 및 사회 기사를 모은 책 '천관율의 줌아웃'에서 이같은 구도로 리버테리언, 리버럴/사회민주주의로 구분했다.  리버테리언을 2사분면, 리버럴/사회민주주의를 1사분면에 놓고 둘의 비교했다. 둘을 구분하는 키워드는 무임승차다.



리버테리언은 땀흘려 노력하지 않고 혜택을 보려는 무임승차를 혐오하는 반면, 사민주의는 국가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경우 리버테리언에 무임승차로 비칠 수 있는 지원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사분면의 논리는 내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지는 않다. 1사분면과 2사분면  세계관이 충돌할때 2사분면 세계관의 강력한 매력은 부인하기 어렵다. 비례 원리는 직관적 호소력과 논리적 일관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공정성에 대한 감각, 그중에서도 특히 무임승차에 대한 강한 혐오는 우리를 2사분면에 잡아 묶어 든다. 사람들은 멍청하거나, 사악해서 비례 원리로 기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자신의 도덕 직관에 충실한 만큼 선하고 인과응보를 실천할 만큼, 정의롭게 때문에 비례 원리로 기운다. 1사분면 세계를 꿈꾸는 진보주의자라면 우선 이 사실, 당신이 극복하고픈 2사분면이 보통의 선한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1사분면의 세계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결과의 평등이 불러올 획일화는 거부한다. 그것은 다양성에도 나쁘다. 하지만 재능과 운이 불균형하게 나눠진 상태에서는 어느정도 결과에 개입하는 것이 더 정의롭다고 믿는다. 즉 기회의 평등을 더 폭넓게 해석하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리버럴이라고 부르고, 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 같다. 두 이념은 1사 분면안에서 위치가 좀 다르기는 하다. 리버럴이 사회민주주의자보다는 더 다양성을 다루는데 익숙하면서, 결과는 덜 개입하려 드는 것 같다. 하지만 어째튼 둘다 1사 분면에 있다."


앞으로 1사분면과 2사분면에 위치한 이들이 대한민국을 주도하며 다양한 이슈를 놓고 치고받고 싸울 것이다. 


3사분면과 4사분면 성향이 주도권을 틀어쥐는 시나리오는 불가능에 가깝다. 대세는 리버테리언과 사민주의간 레이스가 될 것이다. 


현재 판세는 리버테리언의 두드러지는 우세다. 사민주의는 비현실적이고, 성장에 마이너스라고 보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사민주의스러운 정책을 조금이라도 시도하려고 하면 보수 언론과 기업 및 학계에서 쓴소리가 쏟아진다.


그런만큼 리버테리언의 관점을 그럴듯하게 대변하는 것은 그로기 상태로 몰린 지금의 보수 야당이 여당을 상대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그래도 확률높은 승부수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현실론을 앞세워 한발 물러서자고 하는 이들이 나올수는 있겠지만 청와대가 쉽게 입장을 바꿀 것 같지 는 않아 보임을 감안하면 리버테리언의 대변인 노릇해서 차지할 수 있는 시장이 나름 클 수도 있다. 


물론 보수 야당이 계속해서 수준떨어져 보이는 헛발질을 양산한다면 리버테리언들에게도 계속 외면받을 수 밖에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증세를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지금보다는 사민주의에 좀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의료비, 집값, 교육비, 실직 상태라도 최소한의 생활 걱정은 하지 않고 살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걸 갖고 리버테리언쪽 이들과 논쟁해서 이기고 싶은 생각도, 능력도 없다. 싸움보다는 연대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것 같지만  연대라는 것이 말은 쉬워 보여도 행하기는 정말로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천관율 기자도 책에서 "연대는 공짜가 아니며 연대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은 환경 변화에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사민주의 입장에서 리버테리언과의 연대는 불가능한 꿈인걸까? 쉽지는 않겠지만 하기 나름일 수도 있다. 인지과학자이면서 진보 성향인 조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와 '자유전쟁'을 사람은 보수적인 면도 있고 진보적인 면도 있다.


둘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가지 요소가 버무려져 있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이다. 진보가 보수를 지지하는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보수 코드를 건드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내재된 진보 코드를 움직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그가 진보 진영에 투표하게 된다. 인지과학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어떤 메시지가 누군가에게 먹혀들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한다.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과 진실은 버려진다. 인지과학의 세계가 그렇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들은 두 모형 모두 능동적으로 사용하긴 하지만 그들이 이들 모형을 적용하는 삶의 영역은 다르다. 이중 개념 주의자들은 집에서는 엄격하지만 일터에서는 자애로울 수 있다. 또는 반대로 집에서는 자애롭지만 일터에서는 엄격할 수 있다. 집에서는 엄격한 아버지지만 노동조합 정치에서는 자애로운 비사무직 노동작인 경우도 많고, 집과 정치적 신념에서는 자애로우면서, 교실에서는 엄격한 교수들도 많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보수적이거나 반대로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면서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일 수 잇다. 또한 국내 정책에서는 진보주의자이나 외교 정책에서는 신보수주의자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2008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한 시사인 천관율 기자는 나로 하여금 일부러 찾서 읽게 하는 기사를 쓴다.  한겨레 고경태, 신윤동욱 기자 이후 바이라인 검색을 하는 건 천관율 기자가 처음 아닐까 싶다. 그가 구사하는 문장은 진지한 메시지를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이것저것 생각하게 만든다.


천관율의 줌아웃을 놓고 옛날 기사를 책으로 또 볼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될 듯 하다. 천관율 기자는 시의성 보다는 메시지에 무게를 둔 글을 많이 쓰는 스타일이라, 과거 기사라도 해도 유통기간이 지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전히 곱씹어가며 볼만한 글들이 많다. 대단한 문장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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