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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딜라이트R Jul 26. 2023

내리막길

내 발로 네발기기

소속조직 전체가 크게 술렁였던 적이 두 번 있었다.


대다수 직원들에게 '똥'이라 불리었던 공공의 적 길모씨 척결사건, 조직의 지적자산과 인적자원을 들고 떠난 에티 독립(?) 사건이다. 


두 사건은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많은 고민과 혼란, 눈물과 희생을 남긴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나 여기 있을 때 빨리 결혼해~ BR 결혼식에는 꼭 가야 하는데..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는 선교사님들이 사역을 잘할 수 있게 뒤에서 서포트해 주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너는 선교에 관심 없니?"


에티는 종종 이런 말을 했었는데, 떠날 생각으로 한 표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티는 어느 날 사직 의사를 밝혔고 함께 일했던 직원 대부분을 데리고 나갔다.

그는 함께 나간 직원들과 퇴사 약 1년 전부터 NGO 설립 준비를 해왔고, D-day가 되었을 때 직원 몇 명과 업무 지식 및 조직 내 네트워크 인물까지 싹싹 긁어 나갔다. 


'대표님이 다른 성향이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에티는 언제부터 떠날 마음을 품고 준비했을까?'

'내가 아는 에티가 정말 이렇게 뒤통수치고 퇴사한다고?'

'어떻게 나한테까지 한마디 언질 없이 준비하고 나갈 수 있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 물어보지 못했다.

소속조직에서 그들은 역적이 되었고, 전우처럼 지냈던 나는 에티 퇴사 관련 면담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에티가 벌인 일들의 뒤처리는 모두 데이빗의 몫이었고, 그 생고생을 가까이에서 보니 그들을 옹호하거나 궁금해하는 것을 스스로 금지시켰다. 


그래도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내왔고, 아무것도 없던 조직을 함께 만들어 간 사람들이었는데... 이런 상황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한쪽에서는 '배신자'라 불렀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 한다. 

혼란스러웠다. 이런 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기관으로 이동한 경이국장님 뿐이었다. 

집 앞 계단에서 경이국장님께 전화했다.


"국장님... 에티 소식 들으셨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믿기지 않고 너무 혼란스러워요.."


"BR아, 혼란스러울 때는 가만히 있으렴. 시간이 지나면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 데, 그게 진실이야. 시간을 두고 가만히 지켜보면 진실만 남고 거짓은 가라앉아 분별할 수 있게 된단다."


금쪽같은 한 마디. 뼈와 살이 되었다.(지금도 혼란스러울 때 따르는 조언이다.)

국장님의 조언에 따라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

조직은 비상사태이다.


방송모금팀 직원 대부분이 에티를 따라 퇴사했는데, 업무 기술서나 인수인계서가 없다.

심지어 컴퓨터 포맷까지 하고 나갔다. 

남겨진 직원은 2명.

한 명은 팀 내 상습 이간질로 크게 혼난 후 퇴사할 마음에 남은 연차를 모두 써서 쉬고 있던 직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방송모금 업무에 신물이 나 몇 번이고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에 붙잡혀 겨우 출근하고 있던 직원이었다. 

그뿐 아니다.  

방송모금은 심각한 하향세를 타고 있었고, 모금 사장시장이라 불렸다.

타부서원 업무동원 요청 필수, 잦은 새벽출근과 야간근무, 해외출장, 방송사 및 셀럽을 상대해야 하는 등 스트레스 강도가 매우 높은 직무여서 NGO 실무자 대다수가 기피하는 어려운 직무이다. 


하지만 조직은 방송모금을 포기할 수 없다. 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관 공신력(브랜딩)과 셀럽 네트워크, 그 밖의 다양한 홍보효과는 강력하고 매력적이기에.



누가 그곳으로 갈 것인가?



조직이 술렁인다.


뒷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팀장급들을 도마 위에 올려두고 신나게 난도질한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지 않을까? 저 사람은 이 사람에 비해서 이게 좀 그렇지 않을까? 내 생각에는 요 사람이 될 것 같아. 아 걔는 좀 별로.." 


스트레스받는다. 그냥 이 상황이 빨리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팀장급들은 돌아가면서 면담을 했다.


내 차례가 왔다.


"조직이 필요로 한다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노력해서 잘해보겠습니다."


'내가 가야겠다. 그래도 나는 방송모금 경험도 있고, 우리 조직에서 셀럽을 가장 많이 섭외했어. 배분사업과 기업모금 경험도 있고..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까?'


에티가 두고 간 팀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리고 조직구성원이라면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일부기능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부서이동이 결정되었다.


대표님은 부서이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고맙다는 인사를, 데이빗은 첫 팀원이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는 것에 대한 고통과 서운함이 느껴졌다는 표현을 해주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면담 대상자가 가기 싫다 했다고 한다ㅡㅡ;;)


조직 내 다른 부서로 이동할 뿐인데, 팀원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한참을 함께 울었다. 

팀원들은 가장 좋은 책상과 여러 장비들을 새로운 내 자리로 정성껏 옮겨주었다.


사실, 그 해 연말에 다음 해에 달성해야 할 모금성과 대부분을 미리 개발해 두었었다. 

부서를 이동하지 않았다면 마음 편히 회사생활 했을 텐데 왜 이동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까? 

그랬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이 길은 찐 고생길이다. 그래도 갔을 것이다.

조직을 살리고 싶었다. 쉬운 건 재미없기도 하고.


결정적으로는

"내가 너를 돕겠다."(시 27)

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바로 앞에 계셨다.


말씀 하나만 의지한 채 아무것도 없는 맨땅으로.

네발기기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부서를 이동했다. 


감사하게도 나를 아껴준 사람들은 전쟁터로 나가는 장군에게 무기를 하나씩 장착해 주듯, 진심과 사랑을 잔뜩 담은 조언 한 마디씩 해주었다.


"'관계' 아니면 '업무'.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확실히 장악해야 한다." -경이 국장님.


"조직경영에서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해. 인재를 양성하고, 과업을 잘 해결해서 성과를 확대시키고, 조직을 확장시켜 분화하는 것. 이게 조직경영자의 역할이고 조직을 성장시켰다는 지표야." -데이빗.


나는 결국 5년을 돌아서 에티가 제안했던 방송모금의 자리로 왔다. 흥미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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