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엄청난 수면부족을 마주했다. 매일 새벽 4시 30분, 알람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오늘은 쉬면 어때?' 하는 유혹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다행히 오랜 시간 동안의 멘탈 단련으로 유혹의 목소리가 '오늘은...'까지 운을 떼는 순간 화장실로 달려가 버려 나머지 말은 용변을 보며 듣는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종일 나를 감싸는 듯한 수면 부족만은 걷어내지 못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 어찌어찌 매일매일 새벽 운동을 빼먹지 않았다(장하기 그지없다). 나의 SNS 피드는 수많은 긍정의 언어와 내가 해냄과 같은 격려의 글로 채워졌다. 하지만 내 몸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목요일 오후, 나흘간의 부족한 수면들이 끌어모아져 의자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눈앞이 부예지는 현상이 계속 됐다. 이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회사에서 쓰러지면 나는 누가 일으켜주나? 왜 이렇게 잠을 못 잤냐고 물어보면 운동하느라 그랬어요라고 말하면 되는 건가?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심사숙고(?) 끝에 나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 내일 하루는 쉬어가자.
수면 부족은 나와의 싸움이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새벽 기상을 해 왔는데, 이번주에 유독 피곤함을 느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면전에 피로함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나는 부단히도 노력해 왔다. 첫 번째, 가끔씩 육아에 대한 보상으로 종종 해오던 평일 음주를 멈추었다. 가끔 남편이 조금 이른 저녁에 한 잔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오긴 했지만, 나는 수면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칼같이 거절해오곤 했다. 두 번째로, 9시 55분만 되어도 취침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드는 시간이 늦어도 9시였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라도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어 차마 수면 시간을 더 당기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 8시가 지나면 아이들과 함께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해 9시 30분을 넘기기가 무섭게 잠을 청하기도 하고, 남편이 일찍 퇴근해 저녁 시간을 맡길 수 있는 날엔 아예 소파에서 잠이 들어버리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줄여 왔던 수면 시간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난 걸까? 아니면 지난주 잠깐 기상 시간을 미뤘던 영향이 아직까지 미치고 있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우선순위가 잠으로 넘어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아무리 많아도, 내일을 위해 '일단 자야 해!'라고 생각하는 기준의 시각이 신데렐라보다도 2시간이나 빨랐다. 신데렐라는 자정을 넘겨 성을 빠져나오는 바람에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 누더기로 돌아왔는데, 나는 오후 10시가 지나도 잠이 들지 못하면 다음날 영혼이 누더기가 되어 망령처럼 돌아다녔다. 그마저도 신데렐라는 왕자님의 구원을 받았지만, 나는 한동안 육아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누더기가 된 영혼은 스스로 꿰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잠과 싸웠다. 출근과 동시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때려 넣으며 영혼을 다스리고, 과하게 졸린다 싶으면 모든 과업을 내려놓고 침대로 뛰어들며 영혼을 도닥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광등 아래 핑 하고 도는 무언가를 그저 '영혼 기우기'로 때우기는 어려운 형편일 것 같았다.
결국 그렇게 하루를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럼 나는 <오늘의 배틀 : 나와의 싸움>에서 져버린 것일까?
자기 합리화가 싫어 열심히 했을 뿐인데
'쉬어가도 되지!' '내일은 좀 오래 자면 어때!' 새벽 운동 습관을 들이면서, 내가 가장 경계한 것은 바로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였다. 이미 나의 수많은 습관들이 자기 합리화를 통해 적당히 뭉뚱그려져 있는 상태였고, 그 또한 내 습관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새벽 운동 습관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새벽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새벽이야말로 핑계를 만들 수 없는 시간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젠 익숙해져 버린 새벽 4시 30분은, 길지 않은 기간 체화를 통해 운동하기엔 최고의 시간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운동을 끝내도 새벽 6시! 내 삶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운동을 특별한 일이 아닌 마치 프롤로그처럼 삼을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었다. '아무도 내가 새벽에 운동한 줄 모르겠지?'라는 루팡과도 같은 심리도 작용했다. 나는 그 누구도 모르는 시간 동안 점점 더 건강해져가고 있는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내일은 쉬어가야지'라는 마음을 경계했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라는 말은 더더욱 경계했다. 네가 새벽에 일어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지금까지' 란 말이 적용이 되는 거지? 수많은 질타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한없이 나에게 관대한 줄 알았던 자신이 가장 엄격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던 내가, 대낮의 아찔한 현기증에는 마침내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래, 하루정도는 좀 어때. 그리곤 생각했다.
지금의 이 생각은 자기 합리화인 걸까? 아니면 그저 앞으로를 위한 일 보 후퇴라고 생각해도 괜찮은 걸까?
목표가 아닌 수단에 매몰되지 않는 삶 살기
겨우 하루 정도 쉬어가는 것뿐인데,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내가 한 번의 휴식에 고뇌하는 이유는, 그만큼 새벽 기상이 힘들고 지속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싶은 습관이기 때문에, 몇 번의 자기 합리화로 어느샌가 사라져 버릴 습관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쉬이 예외를 두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다.
오늘의 기상 시간은 오전 6시 20분이었다. 6시가 되자, 안방 앞에서 첫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오늘은 왜 운동 안 해요?" 잠이 덜 깨 미처 타이밍 맞춰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첫째는 딱히 대답을 바라고 질문을 한 것은 아닌지 곧이어 안방에서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다시 깜박 잠에 빠져 들었다 흠칫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첫째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고, 둘째는 거실 바닥에 인형과 함께 뒹굴고 있었다. 내가 몇 시에 일어나든 바라보는 풍경이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나는 다시 한번 되새겼다. 나의 건설적인 삶에 새벽 기상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에 휘둘리지 말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새벽 기상으로 인해 내가 가질 수 있는 자기 효능감, 성취감을 생각할 뿐이다. 일어나지 못한다고 반대로 효능감이 사라지는 것도, 좌절감이 생길 것도 아니다. 그러니, 휴식은 그저 휴식으로 받아들이자고.
하루쯤은 쉬어가도 괜찮아. 그것이 진정 '하루'로 끝날 수 있다면, 그것은 주문으로 끝날 자기 합리화가 아닌 진정 꿀맛 같은 휴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휴식이 끝난 뒤 도약하는 아침은, 분명 더 쾌청할 것이다.